‘LOVE’, ‘HAPPY’ 앞에서 얼굴 빨개진 마이 패밀리(200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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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한국에 있는 내게도 뉴질랜드와 남섬의 따스한 봄소식이 전해져 왔다.

반면 한국은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각 가정의 에어컨이 겨울잠(?)을 자러 갔다.

개학 후 정신을 가다듬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니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번 학기에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수업을 섞어서 7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마지막 박차를 가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 내린 비장의 결단인 셈이다.

지난 호에 예고한 대로 뉴질랜드에 계신 우리 부모님이 한국과 일본으로 4주 간 여행을 오셨다. 그래서 지난 두 주 주말에는 늑대의 탈을 벗고 착하고 듬직한 아들로 돌아가 대전과 주변지역으로 부모님께 여행 안내를 해드렸다.

부모님이 대전에 도착하기로 한 9월 둘째 주 토요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자식 셋을 여기 저기로 다 떠나 보내 놓고 항상 근심 걱정하시는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젊어서 여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건만 한국어도 못하시고 이젠 더 이상 젊다고도 할 수 없는 연세를 생각하니 그저 걱정만 앞섰다.

그래도 경륜은 무시 못하는 법! 나의 태산 같던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 부모님은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대전 터미널에 도착하셨다.

택시를 잡아타고 대학 근처 호텔로 향하면서 한국의 나와 뉴질랜드의 내가 함께 공존하는 듯한 야릇한 착각에 빠졌다.

우선 대학에 모시고 가서 간단히 학교를 보여 드리고 한국에서 알게 된 지인들께 소개도 시켜드렸다.

도착하신 때가 마침 추석 명절이라 영업하는 음식점이 드물어 슈퍼에서 사다 둔 라면과 김치로만 첫 한국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다음날 엑스포 공원 근처 강변으로 나가면서 정부 청사 주변의 신개발 지역을 둘러 볼 수 있었다.

과학교사들이신 부모님이 엑스포 공원에 도착하자 자동으로 선생님 모드로 바뀐 것만 빼면 아주 훌륭한 하루였다.

첫 주에 부모님은 수업에 바쁜 나를 대전에 남겨두고 속리산으로 산행을 가셨다. 도시에서 벗어나 산속을 걸으며 아름다운 한국 산세를 맘껏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하셨다.

주말은 내가 나설 차례! 금요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경주로 기차를 타고 출발한 우리는 먼저 묵을 곳을 찾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모텔은 가격도 적당하고 깨끗해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관리인이 방을 보여주는 순간…, 우리 기대와 달리 ‘진동 원형침대 + 거울 달린 침대 헤드보드 + 용도가 궁금한 신기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옷장’ 등이 우리를 맞았다!

당황한 우리 가족은 빨개진 얼굴로 짧은 감사 인사를 건넨 후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에서 모텔 이름에 ‘LOVE, HAPPY, FUN TIME’ 등이 붙은 곳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두 번째 모텔은 처음 보다는 그리 ‘신기하지 않아서(?) 거기서 묵기로 했다.

짐을 모텔에 두고 저녁 무렵 산책 삼아 천마총과 첨성대, 안압지 등을 돌아보고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

다음날 경주 박물관에 들러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러 가는 일정을 잡고 이른 아침에 출발.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장장 40분을 걸어가야 했지만 석굴암 본존불을 보고 나니 이렇게 힘들게 와서 볼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도 오래 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학적 신기를 건축물로 이루어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전부터 경주에 정말 와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한 이번 경주 여행은 한국의 고대사를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요일 아침, 1박 예정으로 부산으로 향했다.

울산을 지나며 거대한 현대산업단지와 정유시설 등이 보였다. 한국 경제 기적의 심장부가 바로 앞에 있건만 시간 상 들릴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침 늦게 부산에 도착했다.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항구 탓인지 사람들이 모두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팬스타 페리가 오사카를 향해 출항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오사카에서 부산 행 페리를 지켜보던 기억이 새삼스레 되살아나며 잠깐 향수에 젖게 된다.

부산 타워에 올라가 항구를 내려다 보니 부산을 왜 아시아 제일의 항구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마도를 보고 싶었지만 구름이 낀데다 이곳 시내 건물 쪽에서는 원래 대마도가 안 보인다고 했다.

부산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한 도시였다 언덕과 계곡에 도시를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할까?

다음으로 유엔 기념묘지에 갔다. 내가 만난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대물려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묘지의 수많은 비석들 보는 것 만으로도 내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마음 속에 이 영상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다짐하며 일부러 사진을 남기지 않고 돌아섰다.

부모님을 다시 뵙고 함께 여행하며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부산에서 부모님은 설악산으로, 나는 대전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설악산 등반 후 일본에서 2주 더 계시다가 뉴질랜드로 가셨다.

다음 이야기를 기약하며 여기서 작별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