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 특집] “남섬에서 다시 ‘골드러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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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에서 개인이 발견한 177g 금덩어리

인류는 오래전부터 금을 찾아다녔고 1800년대에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골드 러시(Gold Rush)’가 벌어져 새 도시가 생기는 등 황금은 급격한 인구 변동을 초래하기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지역과 국가 경제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신세계였다고 할 뉴질랜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더니든과 퀸스타운 등은 금을 찾아 모여든 이들로부터 도시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골드 러시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근래 들어 세계적으로 금값이 크게 오르며 남섬에서는 금광 개발이 다시 붐을 이룰 조짐이 보이는데, 코리 특집으로 뉴질랜드의 골드 러시 역사와 더불어 최근의 금광 개발 붐과 관련된 소식들을 언론 보도와 역사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서해안에서 개인이 발견한 177g 금덩어리

<강변 땅 밑에서 엄청난 노다지가…>

지난 2019년 6월 국내 여러 언론들은, 남섬 현지의 금 구매업자들이 당시까지 50년 이래 목격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평가했던 ‘금덩어리(gold nugget)’를 발견한 행운의 남성에 대한 기사를 일제히 게재했다.

당시 해당 남성은 발이 골절되는 바람에 몇 주 동안 방에만 갇혔다가 처음 밖에 나와 금속탐지기를 메고 남섬 서해안 호키티카(Hokitika)의 한 강가를 찾았다가 그야말로 노다지를 건졌다.

이곳에서 언젠가는 오래전 광산에서 흘러나온 무언가를 건질 수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었던 그가 평소 탐사할 때 다니던 통로에서 50여 m 정도 떨어진 한 바위 옆을 지나는 순간에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동전이나 작은 금속은 소리가 조금 나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가 너무 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겪었던 경우처럼 곡괭이나 아니면 변형된 철이라고 생각하다가 어쨌든 한번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단단한 땅을 5인치 깊이로 파헤쳤다.

그런데 엄청난 물건이 빛을 발하며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순간적으로 얼이 빠져버렸고, 이후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는 엄마에게 전화해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그가 발견한 금덩어리는 무게가 무려 177g이나 나갔고 이를 본 지역의 금 매입업자들은 이런 정도 크기의 금덩어리를 본 적이 없다면서 당시 금 시세로 1만 2,000달러로 가치를 평가했다.

하지만 하나의 금덩어리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더해져 결국 오클랜드에서 전시를 원한 한 구매자가 2만 5,000달러에 구입했으며 남성은 이 돈을 광산 현장에서 일할 광부 자격증과 트럭 면허를 따는 데 사용할 거라고 말했었다.

금속탐지기로 금을 찾는 모습

<호황 누리는 탐사 장비 업체>

한편 당시 보기 드문 금덩어리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평소 취미로 금을 찾아다니던 이들을 비롯해 서해안 지역 주민들을 물론 전국적으로도 큰 화제가 됐으며, 금 찾기에 나서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서해안으로 이끌기도 했다.

또한 그에게 소형 금속탐지기를 판매했던 업체에도 좋은 뉴스거리가 됐는데, 업체 대표는 그가 가장 운이 좋았던 고객 중 한 명일 뿐이며 일생에 한 번 있을 발견을 한 그는 금세기 가장 큰 금 조각 중 하나를 발견했다고 자랑할만한 자격이 있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또한 그의 발견이 더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을 수도 있다는 자신들의 행운을 직접 시험해보도록 영감을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업체 대표는 2021년 11월에도 지역 언론에 다시 등장했는데, 당시 그는 최근 금값이 20% 이상 오르면서 자신의 사업이 덩달아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대표 자신도 지난 1980년대 후반에 퀸스타운 인근의 애로우타운(Arrowtown)에서 금 찾기 열병(gold fever)에 처음 빠졌다면서, 거기에 한 번 빠지면 한마디로 고칠 약도 없으며 헤어 나올 수조차 없어 지금 한창 세계적으로 퍼진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그는 2009년부터는 직접 금을 찾아다니는 일을 중단하고 작은 창고에서 금 탐사 관련 장비들을 파는 소규모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금속탐지기와 같은 최첨단 장비는 물론 금 찾기에 나서는 이들에게 필요한 갖가지 장비들로 2개의 창고가 꽉 차있다고 전했다.

특히 금값이 오르고 호주에서 금 채굴과 관련된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국내에서도 같은 취미를 가지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자신의 사업도 그 어느 때보다도 번창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업체 대표가 인터뷰를 할 당시에도, 그 한 주 전에 넬슨 지역에서 두 사람이 1만 5,000달러 가치에 달하는 금덩어리를 발견했다고 전했는데, 그는 지금이 짧은 시간에 양동이를 금으로 채울 수 있었던 골드 러시 시대는 비록 아니지만 누군가는 가끔 큰 행운을 잡기도 한다고 전했다.

오타고 골드 러시 시절의 광산촌

<오타고에서 시작된 골드 러시>

뉴질랜드의 골드 러시는 1851년부터 시작된 호주보다 10여 년 늦은 지난 1861년 5월에 호주 태즈메이니아 출신으로 빅토리아와 미국에서 금을 탐사했던 토마스 가브리엘 리드(Thomas Gabriel Read, 1825~1894)라는 광부가 중부 오타고의 로렌스(Lawrence) 인근 투아페카(Tuapeka) 강 유역,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 ‘가브리엘 협곡(Gabriel’s Gully)’으로 명명된 곳의 개울 바닥에서 대규모 금맥을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그는 길이 31마일에 너비가 5마일에 달하는 지역에서 땅을 팠으며 모든 구덩이에서 금을 발견했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해 크리스마스까지 무려 1만 4,000명이 이곳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노다지 찾기에 나섰다.

그 바람에 이곳 인구는 1861년부터 1864년 사이에 400%나 늘어났으며 당시 골드 러시 열기가 잦아들던 호주에서 광부들이 대거 모여들었고, 이들은 퀸스타운 인근의 숏오버(Shotover) 강변까지 채굴 지역을 넓혔다.

당시 골드 러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퀸스타운 경찰서와 법원 건물 등 지금까지 보존되는 역사적 건물이 새로 들어서는 등 큰 마을이 생겼고, 지금도 그 흔적을 애로우타운과 함께 같은 지역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들로 꾸며진 ‘중국인 정착촌(Arrowtown Chinese Settlement)’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더니든은 1848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골드 러시에 따른 경제적 호황으로, 지금도 있는 오타고 역사를 포함한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한동안 뉴질랜드 최대 규모 도시가 됐으며, 1869년에는 국내 최초로 오타고 대학이 들어서는 등 골드 러시로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본격적인 골드 러시는 1861년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뉴질랜드에서 금이 발견된 것은 보다 더 오래전이고 마오리도 오타고에서 금이 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제련을 해야 하는 광석은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마오리는 그린스톤(green stone)이나 흑요석(obsidian), 뼈 등을 무기나 도구로 사용했다.

1842년 넬슨 근처에서 소량의 금이 발견됐으며 그즈음 지방 당국들은 경제성이 있는 금을 발견하면 500파운드 보상금을 준다고 공고도 했는데, 앞서 언급한 리드는 당시 금 발견으로 오타고 당국으로부터 1,000파운드의 보상을 받고 호주로 돌아간 바 있다.

1852년에는 코로만델에서 한때 작은 골드 러시가 벌어졌고 1856년에 남섬 최북단의 콜링우드(Collingwood)에는 1,500명의 광부가 모여들어 10년간 15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을 채굴한 뒤 열기가 잦아들기도 했다.

애로우타운의 중국인 정착촌 유적지

<제2의 골드 러시 벌어진 웨스트 코스트>

이후에도 말버러의 와카마리나(Wakamarina) 강에서 금이 나오자 일거에 6,000여 명의 광부가 몰렸지만 매장량은 많지 않았으며, 남섬 여기저기에서 소규모의 골드 러시와 금 찾기 열풍이 계속 불었지만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864년에 2명의 마오리가 타라마카우(Taramakau) 강에서 금을 발견하면서 역사상 ‘웨스트 코스트 골드 러시’라고 명명된 두 번째 금 찾기 열풍이 서해안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금은 1865~66년에 브루스 베이(Bruce Bay)와 오카리토(Ōkārito)와 찰스턴(Charleston) 주변, 그레이(Grey) 강을 중심으로 채굴되면서 골드 러시가 본격화돼 1866년에 호키티카는 인구 2만 5,000명 이상에 술집만 100여 곳에 달하면서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정착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시 캔터베리 지방 당국은 기술자였던 에드워드 돕슨(Edward Dobson, 1816/17?~1908)에게 서해안까지 접근 통로 개척을 위해 와이마카리리(Waimakariri), 타라마카우(Taramakau) 그리고 후루누이(Hurunui) 강 유역에서 서해안에 도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탐사하도록 지시했는데, 그는 아서스 패스(Arthur’s pass)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아서스 패스를 넘어 호키티카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251km에 달하는 도로는 1866년 3월 개통됐는데, 그러나 이미 이듬해인 1867년부터는 지역의 골드 러시 열풍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골드 러시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열풍이 점차 잦아지던 1867년에도 호키티카 항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선박이 드나드는 항구였으며 9월 어느 날에는 41척이나 되는 배들이 줄지어 정박했고 금 수출로 국내 수출액 1위의 항구였다는 사실로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에도 개인 광부들은 떠났지만 기업형 금광 개발업체들은 남아 채굴을 계속했고 지역도 더 확대되면서 오타고의 블런데일(Bullendale)과 함께 서해안 내륙의 리프턴(Reefton)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전기를 금 채굴 작업에 이용하기도 했다.

최근 1년간 국제 금값 추이

<금값 오르자 등장한 ‘반의 반돈(0.93g)짜리 돌반지>

금은 세계 어디서나 널리 통용되고 또 현금화가 쉽다는 장점으로 인해 사람들이 재산을 보전하는 용도로 인기가 높으며, 또 때로는 유용한 투자 수단 중 하나가 되고 부자들의 경우에는 탈세나 재산 은닉, 그리고 상속 수단이 되기도 한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그 가치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오르기도 하는 안전자산인 만큼 서민층에서도 골드바 등 실물을 구입해두는 이들도 많은데, 요즘처럼 전쟁이나 금융위기 등이 발생하면 가격이 갑자기 치솟기도 한다.

지난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전 국민들이 금 모으기에 나선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에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12년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사회가 불안해지고 금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국제 금값은 지금도 장기적인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금값을 보면, 지난 3월 31일에 99.99K의 금 1g이 7만 4,990원이었는데 한 해 전인 2021년 3월 말에는 6만 3,200원으로 1년 사이에 g당 1만 2,000원가량이 올랐다.

흔히 아기 돌반지에 많이 쓰이는 3.75g의 한 돈짜리와 같은 순금 골드바는 온라인에서 35~40만 원에 판매되는데, 이처럼 금값이 크게 오르다 보니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관례였던 한 돈짜리 돌반지는 가격이 크게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순은 목걸이나 팔찌 등 다른 물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됐으며, 또한 ‘반 돈’이 아닌 이제는 ‘반의 반돈(0.93g)짜리’ 돌반지도 꽤 여러 해 전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4월 중순 현재 금값은 매일 변동이 있기는 하나 뉴질랜드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 속에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 앞날이 더욱 불투명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역시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처럼 금 시세가 계속 오르자 외국에서도 그동안 채산성 문제로 중단했던 광산에서 채굴이 재개되는 등 다시 생산이 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과거 골드 러시가 벌어졌던 오타고를 중심으로 새로운 골드 러시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오세아나골드의 매크레이스 광산 전경

<다시 불어오는 골드 러시 바람>

이런 분위기 속에 뉴질랜드에서는 지난 2020년에 금을 탐사하거나 채굴하겠다는 신청이 연간 121건이 접수됐는데, 이는 그 전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다.

특히 오타고 지역에서는 2020년과 2021년에 채굴 16건을 비롯해 탐사 12건, 그리고 좀 더 자세한 광맥 조사가 18건 등 금광 개발이나 탐사, 채굴 등과 관련된 신청이 46건이 이뤄졌다.

오타고 대학의 한 지질 관련 전문가는 금값이 오르면서 전개된 이런 상황은 놀라운 현상이 아니라며, 최근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금 찾기 열풍도 과거 1860년대 골드 러시 당시 실제로 금이 채굴됐던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기술이 더 발전해 이 지역에서 금광을 운영하는 ‘오세아나골드(OceanaGold)’와 같은 회사는 편암(schist rock)을 과거보다 더욱 깊게 파고들면서 수백 만 온스의 금을 채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는 금광 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이들 모두가 성공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이 지역에서 기업 규모가 가장 크면서 또 대표적인 광산인 더니든 인근의 ‘매크레이스(Macraes) 광산’을 운영하는 오세아나골드도 1984년부터 탐사를 시작해 6년 뒤인 1990년부터 채굴을 시작했다.

600명이나 일하는 오세아나골드는 지난 2020년에 14만 4,000온스 그리고 2021년에는 15만 5,000~16만 5,000온스 등 지금까지 지난 30년 동안 500만 온스의 금을 생산했다.

전문가는 앞으로 500만 온스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온스당 2,855달러인 금 시세로는 승산이 있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또한 이 전문가는 1,000여 건의 채굴 신청 중에 겨우 한 개 정도만 성공적인 광산으로 확인된다고 말해, 금은 물론 석유 채굴과 같은 광산이나 유전 개발은 여전히 투기성이 높은 산업 분야임에 틀림이 없다.

한편 또 다른 호주 업체이자 상장회사인 ‘산타나 미네랄스(Santana Minerals)’도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 중인데, 이 회사는 지난 2014년에 2명의 내국인이 설립한 ‘마타카누이 골드 컴퍼니(Matakanui Gold Company)’를 2020년 인수한 바 있다.

이 회사는 매크레이스 광산에서 서쪽으로 90km가량 떨어진 일명 ‘벤디고-오피르(Bendigo-Ophir) 프로젝트’로 알려진 ‘오타고 골드필드(Otago goldfields)’의 250 km2 지역을 탐사했으며, 작년 9월에 해당 지역에 64만 3,000온스 금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서해안 유적마을인 샨티(Shanty)타운에서 패닝 중인 관광객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골드 러시 바람이 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주민들도 많은데, 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이곳은 경관이 뛰어난 와인 재배 지역이라면서 과거 2000년대 초에 금값이 폭락했을 때 광산들이 버려졌던 상황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이런 개발에는 환경 단체 반발이 뒤따르는 것 역시 당연한데 자연보존부(DOC)도 도마뱀 등 토종 동식물 보호와 관련해 광산 개발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은 대형 광산 개발 기업들뿐만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개발자와의 사이에도 벌어지고 있다.

작년 초에는 매크레이스 광산에서 수십 km 떨어진 두 마을의 식수에서 허용치가 40배가 넘는 납 성분이 발견돼 소동이 일어났으며, 당시 광산회사 측에서는 자신들이 캐낸 광석에는 납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었다.

한편 최근 신청된 금광 개발이나 탐사 신청 중 1/5 정도는 취미 삼아 나서는 이른바 ‘호비 마이너(hobby miners)’들인데, 이들에게도 이런 상황이 취미를 즐기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넬슨 출신의 한 호비 마이너는 자신을 비롯한 몇 명의 동료들이 겨울이 아닌 철에 한 해에 몇 번 캐러밴을 몰고 오타고 외딴 지역에 머물면서 금을 찾곤 한다면서, 이는 그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며 우리 누구도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금을 캐기 위해 하루 최대 6시간은 물에 들어가 있고 이는 꽤나 힘든 일이며 또 어떤 때는 모든 게 엉망이 되기도 하지만 운이 좋게 금을 발견하는 날도 있다면서, 그러면 휘발유나 음식값에 일부 충당하기도 하지만 생계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고 전했다.

하지만 금값이 오르자 개인들 중에서도 단순한 주말 취미 활동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탐사에 나서는 이들도 많아졌는데, 실제로 서해안 지역에는 재작년 108건 그리고 작년에도 11월 이전까지 57건에 달하는 탐사 신청이 접수됐다.

이 지역에서 탐사 장비를 취급하는 업체의 관계자는, 서던 알프스 산맥에서 형성된 금이 지각 움직임이나 빙하, 침식 등으로 움직이면서 해안 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리프턴부터 프란츠 조셉 빙하 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서는 강을 따라 띠처럼 만들어진 지역에 여전히 금이 많다고 주장했다.

현재 남섬에서는 일반인들이 허가를 받지 않고 레크리에이션 활동으로 금을 채굴할 수 있는 장소는 모두 19군데로 알려져 있는데, 아무 계곡에나 금속탐지기와 삽, 그리고 사금을 추출하는 팬을 들고 나설 수는 없다.

많은 곳이 이미 누구에겐가 광업권이 설정돼 있고 법적으로 허용되거나 금지된 곳도 많으며 때로는 황철광(pyrites)을 금으로 오인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초보 탐사자들은 클럽에 동참하기도 하며 한 모임에는 1,800명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한 탐사자는 살기 어려운 이 시대가 금 찾기를 부추기고 있으며 자신이 단번에 찾은 금은 최대가 2.2g에 불과했지만 계속 시도할 것이라면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스릴이 있고 이는 마치 사냥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리아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