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여정에 도전하는 ‘얄비’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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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지진으로 크라이스트처치 상징인 대성당이 무너지기 전까지 매년 봄이면 성당에서는 ‘큰뒷부리 도요(Bar-tailed godwit)’의 귀환이 확인되면 당일 종을 치는 행사가 열리곤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도요새는 타종 환영식을 열 만큼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상징물로, 마치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매년 3월 가을이 깊어갈 때면 북쪽으로 떠나는 도요새 송별 모임이 시청 주관으로 열리곤 했는데, 금년에는 오클랜드에서 발생한 지역감염으로 이달 초 ‘코로나19’ 경보가 상향되면서 결국 취소됐다. 이번 주 ‘코리 특집’은 희망찬 내년 봄에 돌아올 이들을 기대하면서 목숨을 건 장거리 이동으로도 유명한 도요새들을 소개한다.

<‘어부지리’에 등장하는 도요새>

이처럼 봄과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던 도요새가 뉴질랜드와 한국 국민들에게 더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 전해졌던 ‘얄비’라는 이름의 도요새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뉴질랜드를 떠난 얄비가 낙동강 하구에서 발견됐고 이후 알래스카로 떠나 그곳에서 번식한 후 계절이 바뀌면 다시 뉴질랜드까지 먼 여행을 매년 반복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류 연구자들과 탐조가들에 의해 얄비는 이후에도 몇 년간 같은 이동을 반복하는 모습이 관찰됐고 이 소식은 양국은 물론 해외언론에도 여러 번 전해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여러 시간 날아오는 그 먼거리를 그리 크지도 않은 연약한 새들이 매년 2차례나 오간다는 사실은 진정 자연의 경이로움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한자성어인 ‘어부지리(漁夫之利)’는 중국 전국시대 고사에서 유래됐는데, 조개와 물고 물린 채 서로 안 놓아주다가 결국 어부에게 한꺼번에 잡히고 만다는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이 바로 ‘도요새’이다.

조류 중 ‘도요목(Charadriiformes)’ ‘도요과(Scolopacidae)’에 속하는 새들을 통털어 일컷는 도요새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13속 85종이 있는데 그 종류가 상당히 많은 만큼 체구도 12~61cm로 아주 다양하다. 도요새들은 보통 날개가 긴 데 비해서는 꼬리가 짧은 편이며 종류에 따라 부리는 길고 곧거나 또는 부리 끝 부분이 위나 아래로 약간씩 굽어져 있는 모습이다.

다리 역시 긴 종류와 짧은 종류가 있으며 목 크기 역시 다양하고 몸 위쪽은 보통 갈색이나 회색이고 아래는 흰색이며 또한 몸 전체에 줄무늬 또는 점무늬가 보인다. 도요새들은 이른바 ‘섭금류(涉禽類, shorebird or wader)’로 불리는 물떼새들 중 하나로 섭금류는 영어 명칭이나 또는 한자의 ‘건널 섭(涉)’자에서 알 수 있듯 주로 해안가의 갯벌이나 내륙의 진흙 습지에 서식한다.

주로 게와 같은 갑각류와 조개, 그리고 갯지렁이 등 무척추 동물을 먹는데, 둥지는 주로 땅 위에 짓지만 호숫가 모래와 자갈이 있는 곳에 만드는 종류도 있고 풀숲의 땅 위 오목한 곳에 구멍을 파고 번식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도요새 종류들은 6~7월에 2~4개 알을 낳으며 암수가 함께 품기도 하지만 암컷 또는 수컷만이 품는 종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새 영어명은 ‘저격’ 또는 ‘저격하다’는 의미의 ‘snipe’인데, 한편 영어에서 ‘going on a snipe hunt’는 ‘헛수고’를 말하며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을 재학생들이 엉뚱한 심부름으로 놀려먹는 장난을 말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 한국까지 날아갔다는 ‘큰뒷부리 도요’는 도요새 무리 중에서도 ‘흑꼬리 도요속(Godwit)’에 속한 종류로 특히 긴 부리의 끝부분이 살짝 위로 향해 있어 다른 도요새들과 어렵지 않게 구분된다.

‘뉴질랜드 버드 온라인(NZ Bird Online)’에 따르면 큰뒷부리 도요는 몸길이가 수컷은 39cm 암컷은 41cm로 암컷이 더 크며, 체중 역시 수컷이 275~400g인 것에 비해 암컷은 325~500g 정도로 더 무겁고 부리도 수컷이 짧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는 도요새들 중에서 큰뒷부리 도요는 ‘멸종 위협(Threatened)’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2016년부터 개체 수가 ‘감소(Declining)’하는 ‘위험에 빠진(At risk)’ 그룹으로 분류돼 있다.

< 4년 동안 한국과 NZ를 오간 ‘얄비’>

‘얄비’는 2008년 4월 낙동강 하구에서 처음 발견된 후 같은 달 20일에 다시 목격됐을 때 한쪽 발목에 흰색 ‘깃(flag)’과 함께 각각 ‘노랑(Yellow)’과 ‘빨강(Red)’ 그리고 다른 발엔 ‘노랑(Yellow)’과 ‘파랑(Blue)’ 등 모두 4개 가락지들이 확인됐다.

흰 깃은 가락지들이 뉴질랜드에서 채워졌음을 의미했는데, 개체 식별용 가락지들의 색으로 처음에 붙인 이름은 ‘4YRBY’였으며 한국에서는 얄비의 사진을 해외의 도요새 연구자들에게 보냈고 그 결과 호주 섭금류 연구 단체인 AWSG로부터 얄비가 뉴질랜드 북섬 마나와투강 하구에서 가락지가 채워졌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당시 뉴질랜드 매시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제시 콘클린(Jesse Conklin)은, 큰뒷부리도요새의 깃 색이 이동 중 어떻게 변하는가를 연구 중이었으며 4YRBY가 마나와투강 이외 지역에서 관찰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한국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제시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후 철새에 흥미를 느껴 2001년부터 다시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나중에 그는 이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네덜란드의 그로닝겐(Groningen)대학에서 연구 중이다.

처음 ‘와르비’로 불린 얄비는 한층 친숙한 이름으로 바뀐 뒤 2009년에는 4월 19일에, 그리고 이듬해 4월 18일을 거쳐 4년째인 2011년에는 4월 17일에 각각 낙동강에서 다시 관찰되면서 언론에 양국을 오가는 진객으로 크게 소개되며 화제가 됐다.

도요새를 연구 중인 제시 콘클린 박사

통상 얄비 같은 큰뒷부리 도요들은 남반구가 가을이 되면 뉴질랜드나 호주를 출발해 태평양을 남에서 북으로 종단해 낙동강 하구 등 한국 각지의 갯벌들에 도착한다.

이때 이동거리는 1만km에 달하는데 북반구를 향해 날아갈 때는 남반구로 향할 때와는 달리 도중에 한국 등지에서 한 달가량 머물면서 번식을 앞두고 체력을 보충한다. 이들은 이후 알래스카나 시베리아로 다시 이동하는데, 알래스카로 향하는 얄비 무리들은 바닷가나 내륙의 툰드라 지역에 머물면서 짧은 여름을 이용해 번식한다.

암수가 함께 부화에 동참하며 알은 암컷 몸 크기 11% 정도로 상당히 큰 편인데, 새끼들은 부화 후 28~30일 후 둥지를 떠나고 4개월가량 지나 남반구에 봄이 찾아올 무렵이면 부모 새들과 함께 첫 비행에 나서 뉴질랜드나 호주로 향한다.

이때 도요새들은 무려 1만1000~1만2000km나 되는 장거리를 8~9일에 걸쳐 단 한 번도 땅에 내려앉거나 물도 먹지 않고 잠도 안 자며 쉼없이 날개짓을 한다. 과거에는 이들이 중간 섬들에 기착하는 것으로 추정했지만 하와이 제도에서도 해마다 큰뒷부리 도요가 10만 마리가 지나가지만 35년 동안 섬에서 발견된 건 40마리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 2007년에서 와서야 미국 국립지질조사국 조류학자들이 피부 밑에 건전지 크기의 무선송신기를 삽입한 큰뒷부리도요 9마리를 알래스카에서 날린 뒤 인공위성으로 남하 경로를 추적한 결과 이들의 경이로운 대양 종단 비행 경로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때 특히 세계 최장거리 비행기록으로 유명해진 ‘E7’이라는 도요새는 8월30일 해가 지기 2시간 전 알래스카를 이륙해 8일간 무려 1만1680㎞를 쉬지 않고 날아 9월7일 저녁에 뉴질랜드 북섬의 테임즈(Thames)만으로 흘러드는 피아코(Piako)강 어귀 습지에 착륙했는데 비행속도는 평균 시속 60㎞였다.

큰뒷부리 도요 E7의 비행 경로

한편 얄비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가운데 2012년 4월에 한국 연구자들은 얄비와의 5번째 만남을 고대하면서 콘클린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얄비는 그 전년 남반구의 봄철에 뉴질랜드에서 관찰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는데, 결국 그 전 해 5월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얄비는 알래스카로 향하던 도중이나 또는 뉴질랜드로 돌아가던 중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는 알래스카에서 겨울 양식으로 도요새를 잡는 원주민들의 사냥에 희생됐는지도 모르는데, 현재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고래나 물개를 잡기 어려워진 이누이트들이 전보다 더 많은 도요새 사냥에 나서는 실정이다.

참고로 큰뒷부리 도요를 포함한 대부분 도요새들은 갯벌이나 습지가 주요 서식지임에도 불구하고 물갈퀴가 없고 헤엄도 못 쳐 밀물이 밀려오면 육지 포식자들을 피해 바닷가의 좁은 지역에서만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 쉴자리를 확보하고자 치열한 자리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고 제때 파도를 못 피하면 결국 익사하기도 한다. 결국 갯벌이 인간의 개발이나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더 높아지는 등 갖가지 이유로 사라지게 되면서 도요새들은 쉴 곳을 잃게 돼 개체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뉴질랜드 측 자료에서도, 현재 7만5000마리가량의 큰뒷부리 도요가 뉴질랜드를 찾지만, 한국 서해안 지역의 개발로 갯벌이 대거 축소되면서 매년 2%가량 개체 수가 줄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큰뒷부리 도요뿐만 아니라 호주 북부에서 출발하는 붉은어깨도요도 5400㎞를 날아 한국 서해 갯벌에 도착해 머물다가 시베리아 북부 툰드라로 날아가 번식하는데, 중간 기착지인 새만금 지구가 없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개체수가 20%가 줄었다는 보고도 나온 적 있다.

한편 도요새들이 알래스카를 떠나기 직전에는 몸 절반가량을 비행에 필요한 연료인 지방으로 가득 채워 공처럼 뚱뚱해지지만 반면 비행에 불필요한 위장을 완전히 비우는 한편 간이나 콩팥과 같은 다른 장기들은 가능한한 크기를 최소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알래스카 출발 직전 레이더 기지와 충돌해 죽은 큰뒷부리도요 수컷을 조사한 결과, 367g의 몸무게 중 201g이 지방이었고 가슴 근육은 한쪽이 27g이나 됐지만 간은 7g, 콩팥은 한쪽이 1.5g에 지나지 않았다.

또 비행 중 필요한 수분은 지방을 분해해 충당하고 잠은 고래 등 해양동물처럼 뇌의 절반씩을 가수면 상태에 빠트리는 방식으로 자는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낮에는 태양의 편광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2000~5000m 상공을 비행하는데, 위도에 따라 최소한 5가지 다른 바람을 이용하며 특히 출발할 때는 알류샨 저압대의 주기적 폭풍을 타 1000㎞를 시속 144㎞까지 날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대한 비행의 영화 포스터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등장한 얄비>

한편 얄비의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한국에서는 얄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됐다.

부산경남 지역 방송인 KNN이 창원시의 지원을 받아 기획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비행’이 그것인데, 이 영화는 “환경의 가치를 알리는 최고의 방법은 환경 다큐멘터리다”라는 신념을 가진 진재운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2009년 하반기부터 뉴질랜드와 호주, 한국과 알래스카 등 얄비가 오고갔을 길을 더듬는 한편 다른 도요새들의 경로를 추적하고자 파푸아뉴기니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과 몽골 등 모두 9개 국가에서 촬영을 했다. 대부분의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러하듯 진 감독 일행도 갯벌 등 촬영지의 험한 자연 지형으로 인한 어려움은 물론 알래스카 원주민들과의 갈등처럼 현지인들의 비협조로 벌어진 난관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촬영 테이프만 500개에 달하는 이 영화는 사전 기획기간 2년을 포함해 13개월의 현지 촬영기간과 후반작업 6개월 등 4000 시간이 넘는 고된 작업 끝에 탄생했다.

실제로 나중에 진 감독은, 몽골에서 야간에 들이닥쳤던 엄청난 초대형 폭풍과 알래스카 툰드라에서 헬기 촬영 중 들이닥친 갑작스런 폭우에서는, 촬영 중이던 카메라에 두 차례나 말로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제작 당시 비화를 전하기도 했었다.

처음에 캄보디아 앙코르 사원의 도요새 조각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는 또한 초반부에 1000년 전 한 마오리 부족이 나침반도 변변한 항해도구들도 없이 오로지 태양과 별자리, 바람에만 의지한 채 남쪽을 향해 망망대해로 출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마오리 지도자는 매년 가을이면 엄청난 새떼들이 남쪽으로 향하던 것을 기억하고 이들을 따라간 끝에 결국 뉴질랜드를 발견하고 이곳에 정착한다. 이때문에 마오리들은 큰뒷부리 도요를, 조상들의 영혼과 동반하는 새인 ‘쿠아카(kuaka)’라고 부르면서 지금까지도 전사들의 노래와 춤을 통해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2012년 10월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작으로 선정된 후 전국 극장에서도 상영된 ‘위대한 비행’은 이듬해인 2013년에 ‘한국방송대상 작품상’과 ‘올해의 방송기자상’ 등 총 7개 상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해 ‘뉴욕페스티벌’에서도 TV부문 ‘최고 연출상(Best Direction)’과 다큐멘터리 부문 ‘자연과 야생상'(Nature&Wild)’도 수상했는데, 당시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높은 작품성과 연출력, 뛰어난 영상미로 야생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특히, 이 작품은 2012년에는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습지 관련 회의인 ‘세계 람사르 총회’ 본회의장에서 TV다큐멘터리 사상 최초로 상영돼 ‘습지와 문명과의 관계를 뛰어난 영상미로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현재도 환경 관련 모임에서는 종종 상영되고 있다. [코리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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