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스트처치, 얼마나 아시나요?” – 아카로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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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으로 크라이스트처치에 속하는 ‘뱅크스 페닌슐라(Banks Peninsula)’에는 ‘아카로아(Akaroa)’라는 이름의 이색적이면서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항만이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국도 75호선을 따라 84km 떨어진 이곳은 지금도 도로 간판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표기돼 있으며 프랑스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이 여럿 남아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경쟁한 남섬 식민지화>
‘아카로아’라는 이름은 ‘카이 타후(Kai Tahu)’ 마오리어로 ‘긴 항만(Long Harbor)’을 뜻하며 이를 표준 마오리어로는 표기하면 ‘황가로아(Whangaroa)’이다.
참고로 영어에서 ‘하버(harbor)’는 해안선을 따라 섬이나 갑(岬), 암초 등으로 선박이 머물기에 적합하게 형성된 자연적인 지형(항만)을 뜻하며, 여기에 화물이나 승객을 싣고 내리는 부두와 방파제 등 인공 시설이 가미되면 이른바 ‘포트(port, 항구)’가 된다.
1840년대 이전에 뉴질랜드에는 영국인들이 북섬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가운데 프랑스도 이곳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또한 남섬에는 프랑스의 고래잡이 선원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프랑스에서 남섬 아카로아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정착촌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협회를 만들었으며, 1839년 말에는 당시 루이 필립(Louis-Philippe) 프랑스 왕으로부터 허가 및 지원 승낙도 받았다.
이듬해 3월에 샤를 프랑스와 라보(Charles François Lavaud) 선장이 ‘오브(Aube)호’를 타고 출발하고 이어 ‘콩트 드 파리(Comte de Paris)호’가 6명의 독일인을 포함한 63명의 이민단을 태우고 남부 프랑스의 항구를 출발했다.
<한 주 사이로 결정된 땅 주인>
한편 당시 영국은 뉴질랜드를 식민지화하기로 결정하고 1840년 2월 6일에 ‘와이탕기 조약(Treaty of Waitangi)’을 체결하고 이를 근거로 뉴질랜드 전역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그해 5월 21일에 이미 선언한 상태였다.
당시 남섬 일부 마오리 족장들도 5월에 이미 조약에 서명을 끝낸 상태였는데, ‘윌리엄 홉슨 부총독(Lieutenant-Governor William Hobson)’이 이와 관련된 작업을 빠르게 진척시키는 동안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라보 선장이 1840년 7월 11일에 와이탕기가 위치한 베이 오브 아일랜즈에 도착했다.

프랑스어로 된 간판

홉슨 부총독은 그를 우호적으로 맞이하는 한편 아카로아에서의 프랑스인들의 활동을 지켜보고자 오웬 스탠리(Owen Stanley)가 지휘하는 군함 ‘브리토마트(HMS Britomart)’호를 긴급히 아카로아로 파견했다.

1900년대 중반 아카로아 항구 모습

그해 7월 23일에 베이 오브 아일랜즈를 떠난 브리토마트는 8월 10일에 아카로아에 도착했고, 이로부터 5일 후인 8월 17일에 라보 선장이 도착했는데, 그는 무력을 동원한 적대적인 행위 없이는 식민지를 건설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이틀 뒤인 8월 17일에 ‘콩트 드 파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아카로아 언덕에서는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Union Jack)이 휘날리고 있었으며 프랑스는 영국의 보호 아래 정착촌을 세우는 동의했다.
이후 1843년까지 2개의 마을이 만들어져 캔터베리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촌이 됐으며, 주민들은 당시 프랑스 왕의 이름을 따 이곳을 ‘포트 루이 필립(Port Louis-Philippe)’이라고 불렀다.
당시 500톤급의 포경선을 이민선으로 임시 개조했던 ‘콩트 드 파리’는 항해 방향을 잘못 잡았고 또 태즈메이니아 인근 바다에서는 심한 폭풍우를 만나 낙뢰가 배의 앞과 뒤 돛대를 강타해 거의 전복될 뻔한 큰 위기를 겪었다.

한편 아카로아 정착촌에서는 1840년 10월 19일에 첫 번째 아기가 태어났는데 ‘콩트 드 파리’가 항해하는 동안 그해 4월에는 배에서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반면에 5개월에 걸친 항해 도중에 3명이나 사망했다.
현재 아카로아의 상주인구는 800여 명에 불과하지만 휴가철을 포함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돌고래 관광과 함께 휴가지로 많이 이용되고 인근에는 전복 진주 양식장도 있다. 또한 지금도 이곳을 포함해 크라이스트처치에는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당시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며, 매 2년마다 10월에 ‘아카로아 프렌치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때가 되면 뉴질랜드 주재 프랑스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첫 배가 도착해 상륙하던 장면을 재현하고 프랑스 요리나 캉캉춤을 비롯한 음악 등이 선보이는 프랑스 문화 축제가 펼쳐지는데, 하지만 이 행사 역시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행사가 다시 내년으로 연기됐다. [코리아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