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비긴 어게인 13 포트 와이너리의 환상적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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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리뷰는 매주 이홍범 여행 에세이스트의 포르투갈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필자는 고려대 법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국내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35년간 기업 법무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탈리아, 그곳에 우리’와 ‘포르투, 오래된 시간을 걷다’ 등의 저서가 있다. [KR]

13. 포트 와이너리의 환상적인 경험


포르투 도착 두 번째 날, 중심 거리의 구경을 마친 우리는 우버를 타고 미리 점심 식사를 예약해 둔 그라함스 포트 와이너리로 향했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언덕에 고즈넉이 자리한 이 와이너리는 단순히 와인을 맛보는 공간을 넘어선다.
1820년부터 이어져 온 깊은 역사와 변치 않는 장인 정신이 깃든 곳으로, 건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과 전통의 무게가 느껴졌다. 방문객은 와인의 향과 맛, 그리고 공간이 품은 이야기를 동시에 경험하며, 오감이 만족하는 작은 황홀경 속에 잠시 머물게 된다.
우버가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이미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도루강이 점점 더 넓게 보이기 시작했고, 강 건너편 포르투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차가 와이너리 입구에 멈춰 섰을 때, 우리는 이미 이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라함스 와이너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켜가 쌓인 우아함이다. 정성스레 가꿔진 정원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2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명문 와이너리의 품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석조 건물과 나무 간판, 그리고 오래된 와인 배럴들이 놓인 풍경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북적이는 도심에서 벗어나 언덕 위에 고즈넉이 자리한 이곳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포트 와인의 깊은 역사를 오롯이 느끼게 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예상치 못했던 정전 사태 다음 날이었다. 그 여파로 그라함스의 레스토랑 비눔(Vinum)의 실내 좌석은 이용할 수 없었고, 대신 파라솔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아야 했다.
직원은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불편을 사과했지만, 우리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이 뜻밖의 상황은 더욱 특별하고 낭만적인 경험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라함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도루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압도적인 파노라마 뷰다. 와이너리 테라스와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포르투 시내와 도루강의 전경은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강 위로 유유히 떠가는 라벨루 보트, 그 너머로 펼쳐진 포르투 구시가지의 파스텔 톤 건물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은 클레리구스 탑까지. 최고급 포트 와인을 음미하며 이 풍경을 감상하는 순간은, 그라함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날은 불안정한 전력 때문에 메뉴 선택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복잡한 선택지 대신, 와이너리에서 준비한 신선하고 소박한 몇 가지 요리 중 하나를 골라 맛보는 경험이었다. 햇살이 강물 위로 반짝이고, 부드러운 바람이 살짝 스치는 테라스는 자연이 만들어 준 조명과 에어컨이 되어, 한층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선사했다. 파라솔 아래 앉아 있으니 적당한 그늘과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라함스에서 바라본 풍경


진한 베리 향의 루비 포트와 고소한 견과류 향의 토니 포트를 맛보며, 각 와인이 가진 다른 매력에 빠져들었다.
루비 포트는 젊고 생동감 넘치는 과일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신선한 에너지를 전했고, 토니 포트는 오크통에서 숙성된 깊은 풍미와 함께 캐러멜과 견과류의 부드러운 단맛이 여운을 길게 남겼다.
세 가지 와인과 함께한 점심은 특별한 코스 요리가 아니었지만, 풍경과 어우러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20년산 포트 와인을 한 병 고르며, 이번 여행의 작은 기념을 남겼다.
와인 샵 직원은 친절하게 와인의 특징을 설명해 주었고, 우리는 집에 돌아가서도 이 순간을 되새길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손에 쥐었다.
와이너리를 나서 언덕길을 내려오니, 가이아 지구의 풍경이 발걸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언덕 너머로는 세계적인 포트 와인 하우스들이 늘어서 있었고,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와인의 도시다운 기운이 묻어났다.
샌드맨, 테일러스, 페레이라 같은 유명 와이너리들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각 건물마다 독특한 건축 양식과 역사적 배경이 느껴졌다.
강변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탁 트였다. 도루강 위를 가로지르는 동 루이스 1세 다리, 붉은 지붕들이 빼곡히 들어선 포르투 시내, 그리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위의 라벨루까지. 와인 한 잔의 여운과 어우러진 이 장면은 포르투를 대표하는 풍경 그 자체였다.
다리 위층에서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작게 보였고, 아래층으로는 차들이 오가며 도시의 활기를 더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도루강변 산책로였다. 작은 카페와 상점,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 강 건너편 와이너리들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층 더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결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반짝이며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했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포르투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현지인들은 조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거리 음악가들은 아코디언과 기타로 멜랑콜리한 선율을 연주했다.
그라함스 와이너리는 포트 와인의 본고장에서 그 깊이를 맛보고, 포르투의 풍경을 즐기며 오감을 채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와인과 역사, 그리고 뜻밖의 소소한 즐거움이 어우러져 포르투에서의 하루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정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어 준 것처럼,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완벽한 계획보다 그 순간의 유연함과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음 호로 이어짐)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