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달보다 부쩍 더워졌다. 어제는 중국에서 황사가 불어와 온 도시를 뿌옇게 뒤덮었다. 5월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고 머지 않아 여름방학이다. 두 달 반 동안이나 도대체 뭘 해야 할까? 방학 계획은 잠시 뒤로 미루고 지난 한 달 동안 지낸 이야기나 풀어 보기로 하자.
첫 주에는 친구 몇몇과 처음 서울 구경을 갔다. 한 친구의 친절로 우리는 그의 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 화성에서 굽어 보이는 수원시 전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옛날 성곽이 구렁이처럼 굽이돌아 도심으로 뻗는 그 배치가 정말 멋졌다. 화성은 내가 본 최초의 한국 전통 건축물이다.
팔달산 등성이를 넘자마자 서울 타워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도심으로 들어 갈수록 엄청난 도시 규모에 입을 다물 수 없었고 그 도시를 남북으로 가르는 한강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제까진 대전이 크고 신기했는데 대전이 갑자기 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먼저 여의도로 갔다. 자전거를 빌려 국회의사당, 63빌딩 등의 주변 건물과 한강변 경치를 즐겼다. 한강변에는 많은 가족 단위 시민들이 나와 연날리기, 전통놀이 등을 즐기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널뛰기에 도전해 보았는데 보기보다 어려웠다.
해질녘 한강랜드 유람선을 탔는데 배에서 보는 한강은 더욱 웅장했다. 배에 달린 휘황찬란한 러브 하트 장식으로 미루어 아마도 연인이나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지나쳐가는 다른 배들에도 커다란 러브 하트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강북에서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남산 아래 쪽 작은 삼겹살 집에 들어갔다. 거기서 먹은 제주 삼겹살은 입에서 살살 녹아버리는 최고로 맛있는 삼겹살이었다!
삼겹살을 뱃속에 채우고 야경을 보러 서울타워로 갔다. 붐비는 케이블카로 올라간 우리는 광장에서 펼쳐진 레이저 쇼를 재미있게 보고 타워에 올랐다. 불빛에 색색으로 바뀌는 서울타워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야경은 내 숨을 멈추게 했다. 서울은 마치 불빛 조각을 이어 만든 퀼트 같았다. 타워 창문에는 그 방향에 위치한 한국 도시와 세계 도시가 함께 표시되어 있는데 오클랜드와 대전이 같은 창문에 있었다.
타워에서 내려와 대전대 교환학생 두 명을 더 만나고 나서 우리는 긴 하루를 접기로 했다. 숙소는 한국에서 제일 싸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 다름 아닌 찜질방. 뉴질랜드 친구가 귀띔을 해줘 알고 있었고 일본에서 가 본 사우나와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는데 한국 찜질방은 내 경험 중 그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입구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궁전처럼 용 조각과 분수 등으로 장식되었고 여기 저기에 베트남 모자가 걸려 있었다. 사우나 입구로 가까이 갈 수록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새어 나왔고.
탕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탕까지 50 미터 정도를 가능한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움직여 갔다. 탈의실과 목욕탕 사이에 카페가 있고 누드로 커피를 마시는 건 아무나 경험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목욕을 마치고 찜질방 용 옷을 입고 공용 찜질방으로 갔다.
첫 번째 사우나 실은 ‘금지된 도시 베이징(the Forbidden City, Beijing)’의 장면과 비슷한 황제실로 옥좌까지 있는데 어떤 남녀가 벌써 옥좌를 침대로 차지해 앉아볼 수는 없었다.
그 밖에도 혹독하게 뜨거운 이집트방, 일본풍의 녹차방 & 욘사마 사원, 얼음방, 황토방 등이 있었는데 황토방에 들어가 몇 초도 안 돼 엄청난 열기에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태아처럼 몸을 말고 녹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주변 한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기, 태권도를 하는가 하면 편안히 잠까지 자는 게 아닌가!
한계에 다다른 나는 덜 뜨거운 방을 찾아 황토방을 나오고 말았다. 방문에는 분명히 “Cool temperature(시원한 방)”라고 써 있던데…. 이제 내가 영어도 제대로 못 읽는 걸까? 우리는 황제방 대리석 맨 바닥에 스폰지 베개를 베고 잠을 잤다. 잊지 못할 경험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다음 날 종묘제례를 보러 갔다. 전통 왕실복식의 제례는 정말 흥미로웠고 관광 공연이 아닌 실제 의식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의식용 말은 못 알아들어도 그 엄숙하고 진지함 속에 전해지는 강한 전통의 힘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점심으로 명동에서 매운 오징어가 들어간 충무김밥을 먹었다. 정~말 매웠다! 청계천을 걸을 때는 천만 인구의 국제도시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평화로웠다. 우리는 고속버스 편으로 떠날 때와 달리 왠지 작게 느껴지는 대전으로 내려왔다.
두어 주 후 중국, 일본, 뉴질랜드 출신 국제학생들을 위한 학교여행 일정으로 다시 서울에 갈 수 있었다. 이번엔 에버랜드가 목적지였는데 직원들 유니폼이 참 귀엽고 상큼했다. 놀이기구를 타려고 오래 줄을 섰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특히 ‘T-익스프레스’는 속도가 105 km나 돼 타고 내리니 온 몸 구석구석 덜덜 떨리는 느낌이었다. 동물농장에서 낮 익은 양을 보니 잠깐 고향생각도 났고 모두가 무척 즐거웠던 하루였다.
5월을 보내며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한국말도 점점 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한국어 공부 길은 아직 멀었지만 한국인의 가슴을 이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격려를 해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