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마무리(Means to a dignified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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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통과 후 1년이 되는 내일부터 존엄사법 (EOLC Act: End of Life Choice Act)이 발효됨에 따라 조력사망은 그저 이론이 아닌 실제 선택가능한 수단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지난 1년간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 법의 시행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실제로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액트(ACT)당 존엄사법관련 대변인, 브루크 반 벨덴(Brooke van Velden)은 법이 시행되고 1년 동안 약 1,000명 정도가 존엄사를 신청할 것이며 그 가운데 극히 일부만 승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정의 협의회(College of GPs) 의료분야 이사, 브라이언 베티(Bryan Betty)는 60명을 조금 넘는 의사들이 뉴질랜드에서 존엄사를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권자 가운데 2/3 정도가 2020년 국민투표(referendum)에서 회복 불가능한 불치병 환자들이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찬성했으며 환자가 (존엄사를) 결정하면 보건부(Ministry of Health)가 독립적으로 지명하는 의사 한 명을 포함, 의사 두 명이 승인해야 한다. 존엄사에 대한 국민투표가 너무 조용히 치러져 놀라울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2020년의 코로나 사태가 다른 주제를 압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뉴질랜드 사람들이 유난히 세속적이라 생명의 존엄성을 두고 논쟁을 벌일만큼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마합법화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는 투표도 같이 치러졌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지만 존엄사보다 더 많은 관심과 논쟁을 끌어냈다.
의회에서 조력사망법안(assisted dying bill)을 심의중인 영국에서는 뉴질랜드에 비해 훨씬 격렬한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데 국민들의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의원들은 법안 통과에 뉴질랜드 의원들만큼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가디언(Guardian, 영국의 유력 일간지. 역자 주)지 컬럼니스트, 사이몬 젠킨스(Simon Jenkins)는 조력사망이 과거 이혼, 낙태, 성적취향에 관한 사안처럼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면서 이미 60년 전에 자살이 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나라가 왜 자살방조는 여전히 범죄로 간주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영국에서는 2020년의 뉴질랜드에 비해 격렬한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 구세군(Salvation Army) 등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뉴질랜드의 투표결과를 두고 존엄사법에 안전장치가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취약계층이 주로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또 벨기에나 네덜란드처럼 적용대상이 점차 확대되어 어린이까지 포함될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불편한 대화는 언론이나 공공의 영역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스스로의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고심해야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뤄질 것이다. 사적이며 고통 끝에 내린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2020년 정치판에서 조력사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법이 시행되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는데 가장 분명히 예측되는 문제는 바로 완화의료(palliative care. 말기환자의 연명치료대신 통증완화와 안정에 집중하는 의료행위. 역자 주)다. 고통스러운 삶이냐 아니면 죽음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완화의료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뉴질랜드의 완화의료에 대한 예산이나 자원은 여전히 부족한데 브라이언 베티는 조력사망과 완화의료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이라면서 충분한 재정과 협력이 함께한다면 환자들이 완화의료까지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치병 환자들이 보다 쉽고 간단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완화의료보다 조력사망을 선택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다만 환자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선택으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인의 결정인 것은 분명하다(The Press, 6 November 2021).
(번역: 김 유한, 뉴질랜드 통번역사협회(NZSTI) 정회원, 호주 NAATI Certified Transl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