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닥거리 한 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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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예전 군대 생활을 그린 영화를 한 편 보자니 힘든 훈련을 하던 중 고참이 후임 병사들에게 “너네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고 말하면서 군기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느릿느릿 움직이던 병사들 행동이 빨라지면서 훈련에 제대로 임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고참 병사가 ‘자식들 진작 그럴 것이지…’라고 흐뭇하게 웃으면서 혼잣말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본인이 겪었던 여러 경험과 함께 한편으로는 ‘푸닥거리’라는 단어가 아련히 저 멀리 추억 속에서 떠오르지 않을까요?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푸닥거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푸닥거리’는 무속인 굿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부정’이나 ‘살’ 따위를 푸는 행위를 가리켜 ‘푸닥거리’라고 했습니다.
민중서림에서 출판한 2003년 개정판 ‘민중서림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도 ‘푸닥거리’를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잡귀를 풀어 먹이는 굿’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 ‘다음’에도 ‘무당이 부정이나 살을 풀기 위해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하는 굿’이라고 적고, 또 ‘푸닥거리하다’를 ‘부정이나 살을 풀기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굿을 하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한국에서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파묘’에서도 무당과 함께 이 ‘푸닥거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는 <‘홍수막’이나 ‘살풀이(살을 피하려고 하는 굿)’가 예방적 의미가 강한 데 반하여 ‘푸닥거리’는 전적으로 치료를 위한 것이다. 귀신에 의한 병을 ‘귀책(鬼責)’이라 할 경우에는 주부 또는 무당이 ‘푸닥거리’를 행하여 잡귀를 쫓아야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고 행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무당이 아니고 일반 가정의 주부가 하여도 되고, 때로는 ‘푸닥거리’와 같은 간단한 의례를 할 수 있는 할머니가 동네에 있는 경우도 있다. ‘푸닥거리’의 형식은 병의 원인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개는 굿보다는 소규모의 간단한 주술적인 의례이다>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지고 무속을 미신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 말은 본래의
의미보다는 위의 군대 사례처럼 변형된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엄연히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이지만 많은 사람이 ‘푸닥거리’를 ‘푸다꺼리’나 ‘푸닥꺼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그 이유가 ‘푸닥거리’가 한글 맞춤법 규정에서 조금 벗어난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거리’는 ‘국거리, 반찬거리’에서 보듯 명사 뒤에 붙거나, ‘마실 거리’처럼 어미 ‘을’ 뒤에 쓰여 내용이 될 만한 재료를 뜻하는데, 이는 ‘푸닥거리’가 바른말이 되려면 ‘푸닥’이란 명사가 따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사전에도 명사 ‘푸닥’은 없으며 결국 ‘푸닥거리’는 ‘푸닥+거리’로 이뤄진 말이 아니다 보니 우리말 조어법에 어긋납니다.
맞춤법 규정에는 어떤 말의 형태를 살려 적을 근거가 없을 때는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야 한다고 되어 있어 ‘뒤에서 일을 보살펴서 도와주는 일’이 ‘뒤치닥거리’가 아니라 ‘뒤치다꺼리’인 것처럼 ‘푸닥거리’를 ‘푸다꺼리’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