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도시의 틈에서 만난 미술관(1)
<리스본 언덕 위 작은 발견, 시아두 국립 현대미술관>
리스본의 시아두 지구는 걸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동네다. 비탈진 돌길 사이로 트램이 천천히 지나가고, 카페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오후를 보내고 있다.
그런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우연히 한 건물 앞에 서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은 석조 건물, 깔끔한 유리창. 시아두 미술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의 분주함이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차분하고 집중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이곳은 1850년대부터 지금까지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처음 만난 작품들은 19세기 말의 정통 회화였다. 정물화와 인물화 속 인물들의 표정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이 스며 있었다. 색채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이 마치 리스본 골목에서 들려오는 파두 선율처럼 마음 깊숙이 울렸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시대가 바뀌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예술가들도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알마다 네그레이루스의 작품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역동적인 선들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했다.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19세기 말 포르투갈의 문화적 활력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단연 콜룸바누 보르달루 피녜이루의 《사자 클럽》이었다. 1885년 작품인 이 집단 초상화는 당시 리스본 카페 ’레아우’에 모이던 문화인들을 그린 것이다.
화가, 작가, 사상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인데,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아내가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카페에서 수다 떨었겠지?” 그 말에 나도 웃었다. 100년도 더 지난 그림 속 사람들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건축 자체도 인상적이었다. 옛 수도원 터 위에 현대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옛 돌벽의 무게감은 그대로 살리면서 깔끔한 현대적 선을 더했다. 특히 지하 전시실은 천장의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시아두 미술관은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문이었다. 여기서 본 작품들을 통해 거리의 아줄레주 타일이나 전망대에서 본 석양, 어디선가 들려오는 파두까지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건 예상치 못한 발견이다. 시아두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곳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예술이 개인의 기억과 만날 때 생기는 특별한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쌓여 한 장소에 대한 애정이 되는 것일 테다.
<벨렝 강변에서 만난 현대미술>
리스본 벨렝 지구는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동네다. 테주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에는 대항해시대의 상징인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당당하게 서 있다.
그런 역사적 건물들 사이에 현대적이면서도 차분한 회색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벨렝 문화센터 안의 MAC/CCB 현대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원래 베라르두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피카소부터 워홀까지 세계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지금은 MAC/CCB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발했지만, 그 예술적 DNA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건물에 들어서니 우선 첫인상이 좋았다. 회색 돌로 지은 외관은 단순하지만 품격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나무 바닥과 부드러운 조명이 반겨주었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여유로움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보라고 말하는 듯한 공간이다.
전시실도 깔끔했다. 하얀 벽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작품이 걸려 있고, 복잡한 설명이나 화려한 장치는 없었다. 그냥 작품과 나 사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1층에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을 볼 수 있다. 19세기 말 인상주의 이후 작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보여준다.
마티스의 강렬한 색깔,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날카로운 붓터치를 보면 당시 예술가들이 얼마나 과감했는지 알 수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본격적인 20세기 미술사가 펼쳐졌다. 피카소의 큐비즘, 뒤샹의 도전적인 작품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 달리와 미로의 초현실주의 작품들까지. 한 발짝씩 걸으면서 미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이 미술관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앤디 워홀의 팝아트 작품들이었다. 《브릴로 박스》는 그냥 세제 상자인데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처제가 말했다. “이게 왜 예술이야?”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워홀이 던지는 질문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상자라도 슈퍼마켓에 있을 때와 미술관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캠벨 수프 캔》도 마찬가지였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캔 하나가 캔버스에 그려져 있을 뿐인데, 그걸 바라보는 순간 ’예술은 뭔가 특별하고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렸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것들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팝아트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바로 옆에 전시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편안한 그림이 있는 실내》도 인상적이었다. 만화 같은 스타일인데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재작년 6월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전시를 보러 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얼마 전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 뮤지엄에서 전시회가 있었던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 미술관에서 좋은 건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을 다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반드시 감동받아야 한다는 강요도 없다. 그냥 자기 속도로 걸으면 된다.
어떤 그림 앞에서는 오래 서 있게 되고, 어떤 그림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게 자연스럽다.
오후 1시쯤 미술관을 나왔다. 밝은 햇살이 눈부셨지만 기분이 좋았다. 방금 본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아직 생생했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벨렝탑으로 향했다. 미술관에서 벨렝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면 충분했다. 벨렝은 여전히 발견과 탐험의 땅이다. 다만 이제는 바다 대신 예술과 역사라는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