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비긴 어게인, 일곱 언덕이 부르는 도시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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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곱 언덕이 부르는 도시의 세레나데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기억 속으로>
비에 젖은 아침, 우리는 호텔에서 출발하여 호시우역을 지나 바이루 알투 언덕을 향해 걸었다.
경사진 골목을 오르내리는 글로리아 푸니쿨라는 운행이 중단되어 언덕 위에 잠시 멈춰 서 있었지만, 그 철제 궤도와 낡은 차체만으로도 이 도시의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잠시 광장을 거쳐 이곳에 왔을 때는 푸니쿨라가 운행하고 있어 사진도 옆에서 찍었었는데 막상 오늘 타려고 하니 비 때문인지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벽마다 번져 있던 벽화는 비에 닿아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리스본이 품고 있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운을 증언하고 있었다.
언덕 끝에 자리한 상 페드루 드 알칸타라 전망대는 19세기 초에 조성된 정원과 테라스로 이루어진 곳이다.
분수와 조각상, 오래된 나무들이 긴 세월을 견뎌온 도시의 흔적처럼 서 있다.
날이 개면서 공원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망이 점점 선명해졌다.
바닥에 깔린 푸른빛 아줄레주 지도는 여행자들에게 리스본의 지리를 안내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와 어우러져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에 서면 테주강의 유장한 흐름과 상 조르즈성의 웅장한 실루엣, 바이샤의 정갈한 거리와 알파마의 미로 같은 골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리스본행 영화 포스터

그 풍경을 바라보던 순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평범한 라틴어 교사였던 그레고리우스가 어느 날 낯선 여인이 남기고 간 책과 기차표를 따라 리스본으로 향하던 이야기.
그는 이 전망대에 서서 처음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스스로를 옭아매던 일상의 질서에서 벗어나 낯선 길 위에 선 그의 시선은 곧 나의 시선과 겹쳐졌다. 풍경은 배경의 의미를 넘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나 역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길을 조용히 묻게 되었다. 전망대에는 언제나 삶의 장면들이 스며 있다.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여행자들. 이 일상의 풍경들은 영화 속 대사처럼,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삶을 수없이 되돌아볼 수 있다”는 말을 조용히 증명하는 듯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거리에는 찬란한 건축과 함께 깊은 흔적도 겹쳐 있다. 살라자르 독재의 그림자, 민주화와 혁명의 열기, 알파마의 오래된 골목에 남은 저항과 희망의 서사들. 영화 속 아마데우가 걸었던 길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리스본의 골목들과 겹쳐졌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 도시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역사와 삶을 품은 또 하나의 ‘야간열차’임을 깨달았다.

카타리나 전망대 카페

<리스본의 황혼,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는 리스본의 늦은 오후,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조용히 시작되었다.
낡고 가파른 ‘아센소르 다 비카’ 푸니쿨라의 선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언덕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도시의 숨결을 하나씩 들이마셨다.
비가 갓 그친 거리의 벽화들은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지만, 그 흐릿함 속에도 리스본 특유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푸니쿨라가 고요히 멈춰 선 오후,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이 아직 시작되기 전 이 고즈넉한 시간을 선택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에 도착하자, 이미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전망대 입구 매점에서 우리는 사그레스 생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황금빛 거품이 살짝 올라온 맥주잔을 손에 쥐고, 테주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의 청량함이란. 포르투갈의 대표 맥주가 주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늦은 오후의 따스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동서가 맥주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다. “우리 여행을 위하여!”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차가운 맥주가 목으로 넘어가며 하루의 피로가 풀렸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리는 ‘아다마스토르’, 이곳은 화려한 관광 명소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소박한 공간이었다.
기타를 안고 앉은 젊은이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즉흥 멜로디, 강물을 바라보며 어깨를 맞댄 연인들의 속삭임, 하루를 정리하며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석양과 함께 공간을 채워갔다.
우리 역시 그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맥주를 마시며 리스본이 선사하는 평온함에 몸을 맡겼다.

카타리나 전망대의 일몰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아다마스토르 석상을 바라보며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포르투갈 대문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불멸의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에 등장하는 바다의 거인, 폭풍과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
석상의 위엄 있는 모습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듯했다. 이미 공연을 하고 있던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부르는 파두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 애잔하면서도 깊은 선율이 황혼빛과 어우러지며, 마치 이 도시의 영혼을 직접 들려주는 듯했다.
저 멀리 4월 25일 다리가 붉은 철골 구조로 테주강을 당당히 가로지르고, 강 건너편 언덕 위의 크리스토 레이 예수상이 두 팔을 벌려 도시 전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해가 점점 낮아지면서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강물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어갔고, 리스본 전체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의 베일에 싸여갔다.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의 진정한 매력은 거창한 볼거리가 아니라 이런 소소하고 진솔한 순간들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그레스 맥주의 쌉쌀함이 입안에 맴도는 동안,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어둠이 서서히 도시를 덮어가고 건물들 사이로 노란 불빛이 하나씩 깜빡이기 시작할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리스본 언덕 위의 작은 전망대에서 보낸 이 시간은, 낯선 여행자에게도 오래된 도시의 주민에게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여운 가득한 빛과 소리, 그리고 사그레스 맥주의 깔끔한 뒷맛 속에서, 우리는 도시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의 깊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점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호로 이어짐>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