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리어왕’과 ‘만유인력’ 그리고 ‘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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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전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뉴질랜드 역시 전국이 봉쇄된 지 열흘이 넘었다. 

코로나 사태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자 국내외 언론들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과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의 유행을 이번 사태와 비교하는 기사들을 자주 내보내고 있다.  

지난 호에 ‘스페인 독감’ 특집을 게재한데 이어 이번 호에서는 전염병의 대명사이자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시련을 안겨주었던 ‘흑사병(페스트, Pest, black plague)’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흑사병이 어떻게 우리를 위협했으며 이를 극복한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류가 이길 것이라는 희망을 독자들과 함께 품어본다. 

(사진1)  16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 - 흑사병이 휩쓸던 14세기 유럽의 모습을 성경 요한계시록과 전도서를 바탕으로 묘사했다.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위대하게 만든 흑사병?> 

우리가 잘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나중에는 교수로도 근무했다. 

뉴턴이 재학 중이던 1665~66년 런던에서는 흑사병이 맹위를 떨쳤고 결국 대학이 휴교하자 뉴턴은 고향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처럼 ‘자가격리’에 들어간 셈이었는데, 뉴턴은 18개월간 이어진 이때를 ‘깊은 사색 시간을 가진 발견의 전성기’라고 회고했으며, 이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인류 문명의 흐름을 바꾸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한편 이보다 조금 앞선 삶을 살았던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am Shakespeare, 1564~1616)도 태어날 당시 흑사병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에 영국 가디언지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작품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내용이 담긴 ‘리어왕(King Lear)’이 1606년경 당시 흑사병으로 모든 극장들이 문을 닫는 등 지금의 뉴질랜드처럼 전 국토가 봉쇄되고 사회가 극도록 우울했을 때 자가격리된 환경에서 씌여졌을 거라는 한 연극 사학자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대규모 전염병 창궐은 때론 역사의 흐름까지 바꾸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하는데, 실제 역사 책을 보면 중세 유럽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으로 살아남은 농노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봉건제도 붕괴가 가속화됐다고 전한다. 

또한 힘이 세진 농노들이 자유를 얻고 농지를 이탈해 도시화가 더욱 진행되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이에 따라 근대 자본주의 토양도 만들어졌다는 또 다른 분석도 있다. 

한편 중세에 등장한 도시들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가축 오물과 함께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하수 시설도 열악했던 비위생적인 도시 환경이 빈번하게 흑사병을 불러들인 측면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가 인류 생존을 위협했던 ‘전염병’ 하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흑사병인데, 이처럼 때로는 인류를 멸망 위기에 처하게도 하고 또 때론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기도 한 흑사병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14세기 본격 등장한 흑사병> 

1347년 흑해를 떠났던 상선 12척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의 메시나에 도착했는데 당시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렸으며 얼마 후 모두 사망했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처음 전파된 계기라고 전해지며 1347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당시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었던 북부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베니스까지 흑사병이 퍼졌다.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영국과 독일,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1351년에는 러시아에도 출현한 뒤 결국 유럽 전역으로 급속하게, 또 널리 퍼졌다. 

이때 대유행으로 유럽 인구 30~60%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학자들은 흑사병 유행 이전 4억5000만명으로 추정되던 세계 인구가 14세기를 거치면서 3억5000만~3억7500만명 정도로 1억명이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뉴턴이 재학하던 시기에 발생한 런던 대흑사병(1665~1666년), 베니스 대흑사병(1679년) 등 17세기까지 유럽에서는 100여 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흑사병 유행이 이어졌고 18, 19세기에도 산발적 유행이 멈추지 않았다.  

유럽 뿐만 아니라 14세기에 몽골이 지배하던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당시 중국 인구의 30%가 사망했다는 설도 있는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인 1330년대 중국 허베이성에서 흑사병이 기승을 부렸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동로마 제국 황제도 못 피한 대 역병> 

한편 14세기보다 훨씬 전인 571년 동로마 제국에서 시작돼 200년 가까이 창궐했던 전염병 역시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같은 균에 의한 흑사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당시 이집트 곡물 수송선이 동로마 지역으로 전염병을 날랐던 것으로 보는데, 한창 기세가 등등할 때는 동로마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에 5000명씩이나 사망했다. 

당시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역시 전염됐다가 간신히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 시기를 ‘1차 대 역병’, 일명 ‘유스티니아누스 대 역병’으로 그리고 14세기 것은 ‘2차 대 역병(Second Plague Pandemic)’으로 각각 지칭한다. 

한편 당시 병에 희생당한 게르만인 유골을 분석한 결과 1차 대 역병의 전파 경로는 이집트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통한 민족 이동도 그 원인 증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4세기 시칠리아에 선단이 당도하던 때보다 더 이른 1095년부터 시작돼 1291년까지 수 차례 이어졌던 십자군의 성지 원정을 통해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처럼 흑사병은 그 전파 경로와 창궐 시기, 그리고 사망자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사진2) 페스트균을 분리한 알렉상드르 예르생, 베트남에서 활약했던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베트남 중부 나트랑에 있다. 

<바이러스 아닌 박테리아가 옮기는 흑사병> 

흑사병은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원인균으로 이에 감염된 쥐의 피를 빤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서 병도 함께 옮긴다. 

‘흑사병’을 지칭하는 ‘페스트(Pest)’는 전염병을 뜻하는 라틴어인 ‘페스티스(Pestis)’에서 왔으며 영어로는 ‘플레이그(plague)’라고 하는데, 영어나 라틴어 모두 처음에는 전염병을 의미하던 단어들이 흑사병의 파괴력이 워낙 거대해 이를 동시에 부르는 고유명사화됐다. 

이처럼 전염병의 대명사가 된 흑사병은 발병 자체는 페스트균에 의한 것이지만 주요한 2개 유형인 ‘가래톳 페스트(일명 선페스트 혹은 림프절 페스트)’와 ‘폐렴형 페스트’는 그 감염 경로가 다르다. 

림프절 페스트는 균을 가진 쥐(설치류)와 쥐에 기생한 벼룩에게 물려 감염되는 반면 폐렴성 흑사병은 감염 환자의 기침이나 체액 혹은 감염 동물의 분뇨나 가래 등이 공기 중에 퍼져 감염되는 특성이 있다.

이런 보균동물들이 사는 지방에는 풍토병으로 존재하는데, 한편 남아메리카 중부와 북부, 아프리카 중부, 이란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2000년 이후에도 10년 동안 유행한 기록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0~15년에 전 세계에서 감염사례 3248건이 보고되고 584명이 사망했는데, 작년 5월과 11월에도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소수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바 있다. 

한편 페스트균은 중국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연구하던 파스퇴르 연구소 출신의 프랑스 세균학자인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 1863-1943)이 1894년 홍콩에서 발견해 분리했다. 

페스트에 감염되면 일반적 증세는 갑자기 오한과 40℃ 내외 고열, 그리고 현기증과 구토 증상이 나타나며 의식이 혼탁해지는데 균 잠복기는 2~5일이다. 

순환기계가 강하게 침해당하고 증상이 점차 진행되면서 혈소 침전으로 검게 변색된 피부에 괴저가 발생하는데, 각종 전염병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바이러스제가 아닌 항생제 투여로 치료하며 병 자체는 단순하지만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적이므로 정확한 조기 진단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특히 위생 상태가 크게 개선되고 쥐가 별로 없는 현대적인 생활 환경에서 페스트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일단 발생하면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질병이다. [코리아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