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총각, 개성에 가다(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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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경복궁, 덕수궁, 남대문 시장 등을 돌아보며 모처럼 대전 밖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3박의 여정 중 하루는 찜질방에서, 이틀은 YHA 호텔에서 잤다. 그 동안 닦은 실력을 발휘해 시장에서 제법 괜찮은 물건도 원하는 가격으로 흥정하기도 했고.

지난 번 이야기한 대로 7월 15일 현대아산에서 주관하는 북한 개성관광을 다녀왔다. 개성관광이 금강산 관광 때문에 취소된 건 아닌가 했으나 다행히 여행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광화문 역에서 6시 정각에 50여명이 모여 도라산으로 가는 셔틀버스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긴 했지만 북한 체험을 하러 간다는 사실에 흥분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서울을 벗어나면 뭘 볼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TV에서 본 모습대로일까? 중국, 일본 학생들이 말해준 대로일까? 직접 보면 잘못 들은 소문은 해결될 테지만 못 본 것에 대한 의문과 의혹은 다시 또 생기겠지….

출발 45분 정도가 지나자 아침 안개 사이로 철책과 전망대 등이 보이기 시작했고 분단 상황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철책이 나타나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자유로 한 쪽은 강과 울타리로 막혀있고 다른 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임진각과 출입국 지점을 향해 좀 더 북쪽으로 올라 갔다. 일행 중 외국인은 단 6명, 핀란드, 네덜란드, 일본, 뉴질랜드 출신이었다. 나중에 8~10대의 다른 버스 일행들과 합쳐 250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임진각 다리에 도착하자 헌병이 올라와 검문을 했다. 다리 위 도로는 뾰족한 철사가 박힌 드럼통으로 막아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검문을 마치고 목적지 도라산을 향해 계속 갔다.

평양 250Km, 개성 10Km라고 써있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 왔다.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라산에서 남한 측의 통관 검색을 마친 후 잠깐 쉬었다가 북한 관광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30분쯤 후 남한의 출국 지점을 지나자 그날의 버스관광이 시작되었다.

양측 군인들이 비무장지대로 승객을 인도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비무장지대 남문 버스 안에서 45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으며 10분 정도 가자 드디어 북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군인들의 군복이 바뀐 걸 보고서야 북한으로 넘어온 것을 알아차렸다. 북한 측 통관 건물로 가는 길에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농기계가 많지 않은 것이 확연했고 길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고압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는 출입국 절차 및 보안 검색을 받는 것이었다. 경쾌한 음악이 안팎으로 흘러 나오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음악을 즐겁게 듣는 것 같았다. 한 여자분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묻자 북한에서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농사를 짓고 있다는 내용이라고 말해 주었다.

관리소에서 북측 안내자가 나와 그 날 우리 안내를 담당했다. 우리는 개성 산업단지 남구역을 지나 갔는데 내가 자주 본 현대, 삼성, 패밀리 마트 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를 지나 작은 마을로 들어서자 그제야 북한에 온 실감이 났다. 가옥들은 모두 낡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마을에 상업광고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구촌 어디에나 있다는 코카콜라 광고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다만 평양에 있는 원수님과 당에 충성을 맹세하는 벽화가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광고였다.

유적은 대부분의 다른 건물들보다는 보존상태가 좋았다. 개성의 첫 느낌은 ‘차가 다 어디 갔을까?’였다. 도로는 넓은데 차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공무 차량으로 쓰는 벤츠와 우리 버스가 도로 상 차량의 전부였다. 우리는 농촌 풍경을 보며 박연폭포에 갔다. 가면서 특이했던 건 붉은 깃발을 든 군인들이 들판, 농로, 건물입구, 교차로 등에 한 명씩 서있는 것이었다. 다음은 어디에 군인이 서있을까 하는 것이 일종의 게임이 될 정도였다.

박연폭포는 정말 아름다웠다. 도시에서 벗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거기서 고려시대에 지어진 포대가 있는 대흥산으로 갔다. 시간이 모자라 포대까지 올라가 볼 수는 없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로 돌아와 개성 민속촌 호텔에 갔다.

우리는 12가지 반찬의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 북한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기며 나온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고 노력해 9가지는 모두 먹었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이었다.

점심 후 개성 남대문과 고려 왕조가 끝을 맺은 선죽교를 찾았다. 다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학교가 하나 있었다. 웃고 장난치며 축구를 하고 더운 여름 열기를 식히려 물속으로 폭탄 다이빙을 하는 북한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고립되어 살고 있어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려왔다.

사찰 몇 곳과 유적지를 더 돌아보고 관광을 마쳤다. 이번 관광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금지되었고 양측의 제한규정상 관광지 사진 외에 개성 시가지나 북측 안내원 또는 시민들이 배경에 나오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북측과 남측에 자리한 거대한 서로 다른 국기를 보며 아침처럼 다시 양측의 수행 절차 협상을 기다리면서 오늘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이 선을 넘어 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펐다. 우리는 30분이면 건너오는 거리를 그들은 아마도 몇 달 몇 년이 걸려도 못 넘을 지도 모른다. 경계를 긋고 딴 세상으로 분리되어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분단 현실이 막막하기도 했다. 도로에 그려진 선이 끊기는 지점이 바로 ‘경계’임을 뜻하고 거기서부터 남한 군인이 우리를 인도해 도라산까지 갔다.

개성에서 하루는 정말 특별했다. 내가 절대 잊지 못할 또 하나의 한국 추억을 만든 훌륭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