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와 첫 만남>
“수지는 배려심이 깊고 착해요”, “수지는 어른스러워요”
학창 시절 나와 함께한 담임 선생님들께서는 늘 부모님께 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시 경제적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던 탓인지, 나는 어릴 적 애어른을 자초했다. 학교에서 문제 없이 잘 지내고, 맞벌이인 부모님 대신 동생도 잘 돌봤다. 부 모님께서는 이런 나를 늘 든든하게 여기셨다.
역설적으로, 이랬던 내가 부모님께 큰 잘못을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엄마 카드를 들고, 부모님 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집 앞 댄스학원을 등록한 것이다. ‘선결제, 후 혼남.’그 당시 나의 무모한 계획이었다. 댄스 학원을 등록하는 것이 무리한 형편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저질러 버렸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댄스학원에 가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봐 주시고,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라는 부드러운 말과 함께 댄스화까지 사주셨다.
당시 유행하던 나팔바지를 입고 학원을 향해 통통 뛰어가던 그 골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댄스와 내가 만난 건 11살 무렵이다.
<방황>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진로를 정해야 했다. 내가 무엇을 하며 밥벌이하고 살아야 하는지 많 이 고민했지만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왜 대학교에 가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4년 내내 진로를 고민해 봤지만, 그때도 하고 싶은 직업이 없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공무원 준비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는 부모님의 제안도 있었다.
그렇게수험생이되면서나는숨막히는시간을보냈다. ‘잘지내?‘,’난널응원해‘나를위한주 변 사람들의 이 말들은 오히려 독으로 느껴졌다.
‘합격하고 나면 평생 공무원으로서 일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합격하긴 할까?’
하루에도 10번, 100번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것이 반복되었다.
당시 국가직 9급을 기준으로 총 4,953명을 선발할 예정이었는데 20만 2,978명이 지원했다. 1년 을 공부하고 시험에 낙방 된 20만 여명의 청춘은 새로운 경쟁자와 함께 또 1년을 준비해야 했 다. 물론 그 낙방 된 사람 중에는 나도 포함이었다. 확신해도 될까 말까 한 시험인데 확신이 없으니,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무의미한 청춘만 흘려보냈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받고,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라 믿어 든든했던 딸은, 계속해서 시험에 낙방하는 걱정스러운 딸이 되어있었다.
<몸부림>
푸를 청(靑), 봄 춘(春), 국어사전에 따르면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 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춘은 푸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청춘은 스스로를 싹틔우지 못하는 구조에 놓 인 채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 이다. 청춘들이 꽃 한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니, 너무나도 비통한 일 이다. 사회가 정한 대학의 순위로 청춘들을 등급 매기고, 경쟁률이 높은 직장을 바라보며 치열 하게 살아간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 생활 또한 만만치 않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 싹틔우기 위한 첫 몸부림이다.
<알록달록한 세상을 꿈꾸다>
“엄마 아빠, 나 세계여행 갈래요” 말 잘 듣고 반항 없던 내가, 허락 없이 엄마 카드로 댄스 학원 을 등록한 이후로 가장 무모한 행동인 듯하다. 나는 ppt를 만들어 내가 여행 가고 싶은 이유와 계획을 발표하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에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좋아 하는 K-POP 댄스를 전 세계 친구들과 함께 추고 싶은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 이 소망해 오던 자녀의 안정적인 삶과는 정반대인 삶이었다. 설득하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너 나이가 20대 후반인데, 돌아오면 뭐 하려고?”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 모든 주변 사람들은 나 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20대 후반은 직장을 가져서 돈을 모으고 배우자를 탐색해야 할 나이이다. 내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으니 다른 사람 들의 질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의 5,000만 명을 넘어 80억 지구의 사람들 모두 같은 흐름으로 삶 을 살고 있을까?
20대 초반 나의 청춘은 사회가 만들어 간 틀 속에 갇혀 이리저리 휘둘려야 했지만, 더 이상 그 러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 은 뭘까, 나는 어떤 모습일 때 가장 행복할까,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은가.
나는 그저 나로 살고 싶었다. 나에게서 답을 찾으니 수험생 때 반복적으로 불안했던 마음이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나는 뉴질랜드에 왔다. 마냥 무모한 꿈을 가지고 왔지만, 어느덧 나는 K-POP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던 미래에 내가 그리던 세상이 실현되니 이제서 야 나만의 싹을 틔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스스로 싹을 틔워 진정한 청춘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이다.
현대 사회는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나 자신을 알 기회가 많이 없다. 나는 청춘들에게 스스로 가 어떤 사람인지 꼭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작은 내가 어릴 적 나팔바 지를 입고 골목을 통통 튀어가던 그 느낌처럼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 해 보는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청춘이 스스로 꽃을 피우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꿈꾼다.
[글쓴이: 김수지, 무용반(K POP 댄스), 유년 2반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