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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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지하철에서 곤히 자고 있는 사람들, 무표정하거나 지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는 나름 충격이었다. 한국 생활의 고단함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기에 참 안쓰러웠다. 그리고 여행객으로서 지하철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내 모습과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다시 한 번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난 저렇게 표정 없이 지내지 말아야지. 인생의 매 순간을 다 누리며 살아갈 거야.’라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6개월의 시간이 지나 한국의 지하철이 나의 주요 교통 수단이 된 지금, 어느 날 창가에 비춰진 내 모습은 내가 처음 보았던 한국 사람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오랜 이동 시간과 한국의 빡빡한 생활패턴에 피곤한 나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멍하니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삶의 방식이 너무나 다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육체는 한국 생활에 젖어 들어, 다른 한국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출근길, 퇴근길, 친구 만나러 가는길…나는 나의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지하철에서 지낸다.

지하철을 오고 가는 시간들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때는 내가 지내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뉴질랜드 생활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하고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한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들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틈에 갇혀있는 내 눈앞에 ‘살기 좋은 도시 서울’이라고 써있는 광고가 눈 앞에 보인다.

서로 밀리는 가운데 인상을 찌푸리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뉴질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의 양보문화라던지 정이 가득한 풍경에 괜시리 마음이 흐뭇해 지기도 한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끌벅적한 학생들, 모든 소음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고 가는 직장인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좋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저마다 손에 핸드폰, 아이패드를 들고 게임을 하거나 만화, 드라마를 보거나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 때로는 이런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다. 사람들이 많은지라 싸움도 자주 일어나는데, 어느새 이 모든 것들에 무반응한 내 모습을 보니 나도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되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나는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웃어주고, 작은 일에도 “Thank you.”, 부딪치면 “sorry”라고 말하던 뉴질랜드 생활이 너무나도 그립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이 지하철은 나에게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지하철 안에서 생겨나는 생각들로 인해 나는 뉴질랜드에서 내가 체험한 것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결심했던 것들, 나의 지금의 생활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는 한국의 지하철을 오늘도 즐겁게 타고 갈 것이다.지하철아! 고마워. 오늘도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