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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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저기 시끄러운 곳 좋아하시나요?”

내 곁에 선 아이가 두 눈을 빛내며 묻는다. 아이가 발길을 멈춘 곳은 바로 리카톤 몰에 딸린 대형 오락실, 타임존 앞. 구경만으로도 아이에게 큰 행복을 주는, 각종 자동차 오락기들이 즐비한 곳이다. 세상 모든 움직이는 기계들과 그 작동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 사내아이에게 오락실은 환상의 세계 그 자체일 것이다.

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말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윙윙 돌아가는 환풍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빔비 (빙빙)’라는 말을 하거나, 달리는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입술을 바르르 떨며 ‘붐붐~’이라는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아이는 온갖 움직이는 것들을 좋아하는 성향의 소유자일 것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이런 성향은 점점 더 강해져 갔다. 만물의 작동 이치를 궁금해해 본 적이라곤 딱히 없었던, 100% 문과형 인간이었던 나에게 이 아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녀석의 신체를 고루 발달시키고, 체력 또한 향상시켜주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데려간 텀블 타임(아동용 운동기구/매트가 구비된 체육관에서 종종 진행되는 신체놀이 시간)에서 녀석은 몇몇 운동기구에 도전해보는 듯하더니 이내 평행봉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나사 돌리기에 심취해버렸다. 지독한 길치인 초보운전자 엄마가 미리 왕복 루트 답사까지 해가며 간신히 뫼셔간 곳이었거늘…

‘다양한 동물들을 보여주고, 생명의 소중함까지 알려줄 테다!’라는 크나큰 포부를 안고 데려간 윌로우뱅크 동물원에서도 아이는 그저 심드렁했다. 동물들이 무섭다며 피하고, 냄새가 난다며 인상을 찌푸리던 녀석. 그러던 중 아이의 얼굴에 갑자기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싶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를 그토록 열광시킨 것은 바로 한 구석에 놓인 낡아빠진 녹슨 트랙터였다! 그 위에 냉큼 올라탄 아이는 움직이지도 않는 핸들을 조그만 두 손으로 꼭 쥐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히 웃었다.

그뿐이랴. 큰맘 먹고 떠난 고국방문 중 롯데월드에 갔던 날에도 내가 꿈꾸었던 큰 그림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이번 여행의 확실한 하이라이트가 되어주리라 굳게 믿었건만, 애써 태운 놀이기구에서 아이는 무섭다고 울며불며 “내려요! 내려요!”를 외쳐댔고 드넓은 공간 속에서 피곤해할 뿐이었다. 결국 오락실 안에 들어가서야 활기를 되찾는 아이의 모습에 한숨만 나왔다.

그럼에도 이 집요한 엄마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달이 뜰 무렵까지 기다려 야간에 펼쳐지는 ‘렛츠드림 나이트 퍼레이드’를 이 아이에게 보여주고야 말았다. 반짝이는 조명과 웅장한 음악, 무용수들의 우아한 춤사위, 화려하게 치장된 퍼레이드 카들… 이 모든 것들이 녀석의 정신세계에 낯설고도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길 기대했지만, 무용수들과 마지못해 하이파이브를 나눈 아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하품을 하며 제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래, 이곳이 너의 취향이 전혀 아니라면.. 이쯤 하면 되었다…’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터덜터덜 그곳을 벗어나려던 찰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저거 보여주세요! 저거 저거 저거!!!!!”라고 크게 외쳤다. 조금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녀석이 확 살아난 것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를 소리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정빙차였다. 아이스링크의 얼음을 고르게 관리해주는 거대한 정빙차와 그 차를 능수능란하게 운전하는 한 아저씨의 모습에 아이는 홀딱 빠져있었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관찰하던 아이는 그제야 흡족한 얼굴로 ‘이젠 집에 가요’라고 말했다.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가 보여주고픈 것을 강요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비장한 각오로 큰돈과 노력을 들여보았자 다 부질없다는 것을. 그저 아이가 타고난 성향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주는 편이 오히려 현명하다는 것을.

오늘도 아이는 쇼핑몰에 있는 자동차 놀이기구들을 타러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를 배웅하고, 한층 고요해진 집에서 이 글을 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것에만 몰두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을 테지만,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이 녀석은 커서 대체 어떤 사람이 될까? 아직 알 순 없지만, 오늘 그 자동차들에 오를 때처럼 자신의 두 눈을 반짝이게 하는 일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륜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