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는 언제 풀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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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춘기 소녀시절,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아담한 이층집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던 하얀 목련나무는 이 층에 있던 내 방의 키 높이와 거의 같아서, 봄이면 그 눈부신 하얀 목련꽃잎이 바람을 타고 내 방안으로 떨어지곤 했다.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커다란 꽃잎을 툭 툭 떨구던 하얀 목련 꽃을 바라보며 감성 어린 마음으로 박목월 님의 시를 읊조리곤 했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를 접하면 어느새 나는 밝은 봄 햇살에 하얗게 빛나던 그 이 층 내 방 창가에 서 있곤 한다.

먼 훗날,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된다면, 아니면… 외계인들을 운 좋게 만나 그들의 고도로 발달된 타임머신을 빌려 탈 수 있다면, 머~언 우리들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 볼 수 있으련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공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고 하니, 과거에 경험했던 향기와 내음, 그리고 소리와 시각이라고 한다.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목련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시인의 이 음악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만 한 대 있었더라면 더욱 어울렸을 아담하고 예뻤던 이층집. 그런데 그 예쁜 추억의 이층집에서 우리는 겨우 3년밖에 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전세를 살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는 그 이층집보다 못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될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3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래된, 그러나 아직도 맑은 소리를 내는 올드 피아노 앞에 앉아 나는 가끔 못 치는 피아노의 건반을 딩동거리곤 한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한(?)으로 인해, 내 아이들에겐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기회가 되는대로 배워 보라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른다.

그리도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이 컴퓨터 자판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날렵함보다 더 우아하게 내 열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었을 텐데… 오호 통제라… 그 노무 돈이 웬수였다. ^^

언젠가, 딸애 생일에 초대를 한 몇몇 친구들을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 주던 때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대 여섯 명 되는 딸아이 친구들의 집이 하나같이 거하고 좋았다. 속으로 ‘음… 이 집은 백만 불은 족히 나가겠군, 음, 저 집도 백만 불은 훨 넘을 거야.’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딸애가 하는 말이,

“엄마 우리친구들은 엄청 부자예요. 그 애들에 비하면 우리는 무지 가난한 거 같아요”

“헉! 가난?” “애가 가난이 뭔 지나 알고 하는 말이야? 너 가난이 어떤 건 줄 아니?
(비록 지붕에서 물은 새지만…) 우리 집 있지? 차도 있지? (비록 20년이 된 낡은 차이긴 하지만…) 너 구두가 몇 개니? 너 옷이 얼마나 많아, 너 핸드폰도 있지? 노트북도 있지? 디지털 카메라도 있지? 그럼 너랑 우리는 무지 부잔거야.”

그러나 요즘 집 없는 사람이, 차 없는 사람이, 자기들처럼 핸드폰, 디카 없는 애들이 어디에 있느냐며 그런 것은 기본인양, 그래도 우리는 가난한 거란다. 그야말로 상대빈곤이다.

“엄마, 그 친구네 집은요, 아빠가 사업을 하셔서 돈이 엄청 많데요. 그리고 다른 친구네 집은요, 아빠가 그 나라에서 유명한 성악가래요. 블라블라…”

그런데 옆에서 듣던 아들녀석이 거든다. “엄마, 내 친구 아무개는요, 통장에 돈이 엄청 많아요. 우리보다 부자라서 용돈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
퍽!! “이 넘아, 그건 그 친구가 너 보다 더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 거야”

먹고 사는 일이 최대 관건이던 옛날의 절대 빈곤에 비해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한 남과 비교하는 상대 빈곤이 요즘은 더 많다고 하는데, ‘오호 애제라..’ ‘머니’ 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울 딸이 이리도 부자친구들한테 기가 죽는단 말이냐.

그러니 이쯤에서 꼭꼭 묻어두었던 가문의 비밀을 조심스레 오픈해서리 들려준 말인즉, “딸!! 조금만 기다려라, 복권만 하나 당첨되면 말이야…” 자주 써먹는 그런 식상된 말이 아니라, “저기 말이다, 스위스 은행에 꽉 묻어둔 우리의 검은 계좌가 말이다, 언젠가 풀리는 날이면 말이다… 우리 가문에도 영광이 오리니… “

그 말을 전한 이후로 울 딸은 심심찮게 물어온다. “엄마, 스위스 은행에 있는 우리 검은 계좌는 언제 풀린답니까? 그 거이 풀리면 저 30년 다 되어 가는 올드 피아노 좀 바꿀 수 있답니까? 저 털털거리는 머시기 한 차도 좀 바꿀 수 있겠지여?”

그래, 기다려봐! 곧 세월이 좋아지면 그 검은 계좌를 명주실보다 더 하얗게 세탁을 해서리… 음…그런데 세탁기가 문제구나. 세탁기는 공동으로 구입을 하자고 우리보다 더 까만 계좌를 갖고 계신 분들께 제안을 해 봐야겠다. 머시냐… 소문에 의하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시기한 인사들 중에, 까망 계좌 갖고 계신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신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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