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체성 (Do we know who w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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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죤 키 (John Key) 수상이 뉴질랜드 국기의 변경을 위한 국민투표를 처음 언급했을 때만 해도 그의 제안은 올해 선거를 앞두고 다른 중요한 문제들의 논점을 흐리려는 시도로 보였을 뿐이었다.


이는 그 때까지 국기 변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저조했던 데다 보다 시급하게 논의할 사안이 산적해 있었던 까닭이다.


키 수상은 총선일정 발표와 동시에 국기 변경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자신은 검정 배경에 실버 펀(Silver fern: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고사리-역자 주)이 포함된 디자인을 선호한다고도 밝혔다.


총선 때까지 국기 변경을 두고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곧 이 문제가 일반 국민의 관심이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키 수상은 2016년 4월까지 이 문제를 결정짓기 위해 초당적인 논의와 공청회 그리고 두 차례의 국민 투표를 포함한 세부 절차를 설명하면서 국기 변경 문제를 다시 끄집어 냈지만 그의 시도는 여전히 시기상조라 할 수 밖에 없다. 


키 수상은 국기의 디자인에 대해서 만큼은 유연한 입장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실버 펀 디자인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그의 판단은 옳다.


검정 깃발은 해적, 무정부주의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살인집단인 이슬라믹 스테이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실버 펀이 뉴질랜드의 상징인 것은 맞지만 올 블랙스(All Blacks) 럭비 팀과 대기업의 로고로도 쓰이고 있는 바, 아무리 친숙한 디자인일지라도 기업이나 스포츠 팀에서 이미 사용중인 로고를 국가의 상징으로 채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 밖에도 본 논쟁이 보다 중요한 다른 문제들의 논점을 흐리게 할 의도는 아닌지 하는 의혹도 여전하다. 키 수상은 이번 주, 국기변경문제를 다루게 될 초당적인 위원회 구성을 시작할 것이라 밝혔는데 이 위원회가 3-5 개 정도의 디자인을 선정한 후 그 가운데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을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두 번째 국민투표에서 현재 국기를 새 디자인으로 변경하는 것에 찬성하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이러한 절차는 위원회가 디자인을 정하고 정치인들이 최종 결정을 내렸던1965년의 캐나다의 국기 변경이나 1994년의 남아공의 국기변경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훨씬 민주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남아공은 백인통치의 종식과 함께 엄청난 변화를 겪은 뒤 국기가 변경되었고, 캐나다의 경우 장기간 국민과 의회의 토론을 거쳐 변경이 이뤄졌던 까닭에 두 경우 모두 국기 변경이 그 나라의 새로운 변화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정체성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가 새로운 상징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논의조차 지금껏 이뤄진 바 없었으며 수년 전 국기변경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수렴을 목적으로 구성되었던 위원회가 확인했던 것처럼 일반 국민들은 국기 변경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국기가 한 나라의 영원한 상징인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에 대해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국기 변경은 절대로 급작스레 이뤄질 일이 아니며 아무리 수상이라 해도 마음대로 밀고 나갈 사안이 아니다.

(원문: The Press 사설, 번역: 김 유한, NZSTI Member, NAATI Professional Transl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