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꼬~옥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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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인 친구가 있습니다.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말을 걸어 와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어를 독학 중이라고 하는데 어조가 좀 어색할 뿐이지 읽기, 쓰기는 물론 뉴질랜드에 어렸을 때 온 한국 아이들보다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도 합니다.

너무 열심입니다. 저도 같이 중국어 공부도 할 겸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교환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은이는 한국어를, 그 친구는 중국어를 서로에게 가르쳐 주기로 말입니다.(이 친구 아랍어도 독학 중입니다.)

처음에는 마치 친구보다는 선생님과 제자, 아니 그 보다도 더 거리가 멀고 어색한 관계였습니다. 그 친구는 뭐랄까, 낯을 가린다고 할까,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고 할까, 베일에 가려진 심장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저에게 그것도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는 것이 우연인 건지 인연인 건지….

그렇게 반년이 지나던 어느 날, 몇 번이고 나에게 무언가를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결국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습니다. 들어본 즉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로 바빠서 보모에게 맡겨져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모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루 종일 혼자 방에 가두어 두거나 밥도 잘 주지 않아서 아침에 그 집에 맡겨질 때마다 가기 싫다고 울던 기억이 끔찍하게도 생생히 기억난답니다.

그 친구 부모님도 뵌 적은 없지만 친구에 따르면 조금 많~ 이 보수적인 분들인가 봅니다. 절대 공부, 부모에 대한 절대 복종 등 말입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들 같습니다.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관심,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오로지 공부, 공부!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노이로제 증세 같은 것 말입니다.

이 친구 한 마디로 우울증이었습니다. 대인 기피증도 있어서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어찌할 줄을 모르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립니다. 밤이 되면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잠을 못 이룬다고 합니다. 난 이 사회에 속하지 않는 듯하다면서 삶의 목적이 없다고 하는데 마치 곧 죽을 사람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주고, 너 주위에는 친구인 나도 있고, 사실은 널 많이 사랑하지만 단지 표현을 못하시는 너의 부모님과 누나도 있지 않느냐고 어르고 타일렀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되고 저도 지쳐 갔습니다. ‘웃는 얼굴로 잘 지냈어?’ 라고 물으면, 물을 때마다 ‘아니, 어제도 잠을 잘 못 잤어.’ 라는 데 한두 번도 아니고 뭘 어쩌란 말입니까? (왜 잠을 못 자냐고요! 전 너무 잠이 많아서 탈인데…. )

결국 저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하긴 제 성격에 거기까지 버틴 것이 용하죠.(아무래도 전 상담가는 될 수 없을 듯 합니다. 가능성 0%) 아니,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솔직히 나이가 들면 생각도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독립적이 되어 가며, 또 그만큼 외로워지는 것 아니냐고, 넌 가족이랑 살지 않느냐고, 난 티격태격 싸워도 좋으니까 가족과 살았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울그락 불그락한 제 얼굴에 친구도 많이 놀란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아 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와 대화 중에 생후 5살 이전은 우린 기억을 잘 하지 못하지만, 그 것이 평생 그 사람을 좌우하는 인격체 형성에 중요한 시기랍니다. 그 시기에 충분한 사랑을 받고, 받지 못하고의 차이가, 그 아이의 잠정적 사고방식과 따스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지는 가 그렇지 못하는 가의 80% 이상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후천적 생활환경에도 영향을 받겠지만 말입니다.

친구 생각이 번뜩 들면서 미안해졌습니다. 조금 더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 주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뒤 그 친구는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눈 듯 합니다. 가족과의 대화에는 그다지 좋은 진전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선 많이 밝아진 친구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바빠지는 사회,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더불어 맞벌이 부부 수도 늘어갑니다. ‘아이의 양육을 위한 돈을 위해서’라는 점도 없잖아 차지하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유아원이나 유치원, 혹은 혼자 놀 때 필요한 장난감 몇 개보다도 더욱 필요한 것은 아빠와 엄마의 관심과 사랑 아닐까요? 사실상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하는 은이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