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도착한 지 두어 주 지날 무렵, 대학 동아리에서 마련한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거기서 영어를 참 잘하는 여학생을 만났다. 그 후 몇 차례 만나 시간을 보낸 뒤부터 그녀는 헤어질 때면 날 안아주며 안녕을 하는 것이었다. “아! 내게도 꿈에 그리던 예쁜 한국 여자친구가 생기려”나 하는 당찬(!) 기대로 그 다음부터 그녀를 만나게 됨은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이었다.
그녀는 자상하게도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전자사전을 빌려주기도 했다. 얼마 후 그녀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동아리 친구들과 서울로 문상을 다녀 왔다. 나는 뉴질랜드 식으로 조문 카드를 써서 그녀의 가족에게 건넸다. 며칠 후 그녀는 서울까지 와준 것에 고마워하며 대전에 내려오면 연락하겠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그녀는 대전에 돌아온 뒤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날 피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지구상 가장 난해한 생명체가 여인이라고 그 누가 말했다던데…….
나는 여자 만나려고 나이트 클럽에 가거나 하는 타입은 절대, 절대(?) 아니라고 먼저 말해 둔다. 그래도 한국의 나이트 클럽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호기심에 몇 달 전에 한 나이트 클럽에 가 보았다.

친한 한국 친구 한 명과 다른 중국 친구도 같이 갔다. 클럽에 가기 전 ‘호프&소주방’에 들러 먼저 한 잔하며 분위기를 돋구기로 했다. 그래야 나의 절묘한 막춤에 신경이 덜 쓰일 것이므로!
한국 친구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부비부비’라는 이름의 클럽이었다. 가까스로 진입에 성공-야호! 하지만 춤에 자신이 없는 내 친구 녀석들이 도대체 무대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녀석들을 무대로 끌어 내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어쨌든 무대 한 쪽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춤추던 차에 건너편에서 날 지켜 보는 호기심 어린 두 쌍의 검은 눈동자가 있었으니, 그녀들은 영어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춤하고는 아주 거리가 가까운 이름하여 아! 리! 따! 운! 낭자들이었다.
나 역시 한 쪽 눈 사이로 그녀들의 춤추는 것을 슬금 슬금 관찰하다가 드디어 같이 춤을 추게 되었다. 춤추는 것에 지루해 하던 내 친구들은 날 버리고 집에 가버렸고 난 새벽 4시까지 그 중 한 명과 열심히 가무를 즐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다. 아리따운 낭자에게 넋이 팔려 혼자 남긴 했는데 지하철로 단 한 번 밖에 가 본 적이 없는 친구 녀석 집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우여곡절 끝에 40 여 분은 족히 걸은 후에야 겨우 집을 찾았으니 그날 난 친구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 되었다.
그 후 그녀를 두 번 더 만난 적이 있지만 우리는 높은 언어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그녀는 내게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안되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내 한국어가 조금만 더 유창했더라도 나와 그녀의 운명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쓰라린 가슴을 안고 난 한국어와의 길고 긴 전쟁터로 다시 돌아갔다, 여자친구도 없이.
또 다시 나에게 다가온 한국 낭자 사건은 한 달 전쯤 내가 환경 스카우트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였다. 나는 1팀에 있었고 그녀는 8팀에 있었는데, 어느 날 늦은 저녁(사실 밤 11시다 보니까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에 몰래 팀을 빠져 나와 둘이서 산책을 갔다.
너무도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 보니 우리가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11시 45분, 결국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스카우트 리더에게 무단 이탈한 죄로 경고를 먹었고 프로그램이 다 끝날 때까지 자기 팀하고만 같이 있으라면서 야단을 맞았다.
이틀 후, 그녀에게 스카우트 프로그램이 끝나고 만나고 싶은지 묻자 그러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영화관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녀는 내 여자친구가 된지 한 달 째다.
키위 총각 데이브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며, 이만 나의 좌충우돌 한국 낭자 기행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