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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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솔솔 부는 저녁, 나는 집앞에 있는 카페에 동네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 동네 친구란 다름 아닌 뉴질랜드에서 한 도시에 살던 언니다.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친구이고, 가족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보게 되고, 한 동네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함께 한국 사는 생활도 이야기하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도 나누니 참 마음이 좋았다. 농담같이 말하기를, 우리 둘이 있으면 갑자기 우리 주변이 한국이 아니라 뉴질랜드가 되어 버린다며 웃었었다.

얼마전에는 뉴질랜드에 어학연수 왔던 동생의 고향인 소안도를 방문했다. 기차, 버스, 배를 다 타야 갈 수 있던 곳…… 함께 간 동생이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이런데 와볼까 싶었다. 직접 잡으신 생선과 정성스러운 향토음식들도 모자라, 집에 갈때 가져가라고, 각종 해산물과 김치까지 싸주셨다. 사실 그 동생의 부모님은 이번 여행 때 처음 뵌 분들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선물이라도 보낼까 한 순간, 머릿 속에 얼굴도 잘  몰랐지만 나에게 친절을 배풀어 주셨던 여러 분들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다른 도시에 놀러갔을 때, 흔쾌히 방을 내 주시고, 손수 그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대접해 주시고, 자신의 택시로 먼 곳까지 데려다 주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들…….모두 다 뉴질랜드에 어학연수 왔던 사람들의 부모님이다. 자신의 자녀들이 뉴질랜드 있는 동안 잘 해 주어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잘 지내라고 하신다.  

그 친구들이 뉴질랜드에 왔을 때, 그들은 유학생이었다. 유학생활에 외로움과 어려움을 말했을 때,  가끔 집에서 먹던 맛있는 것들을 갖다주고, 커피 한 잔을 사준다던지,  내 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때는 그렇게 언제까지나 나는 그 곳에 사는 사람으로, 그들은 그 곳의 방문객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한번 그 동안 15년 간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는 인생의 오묘함을 느낀다.

어느덧 나는 가족을 떠나 한국에 온 유학생 같은 신분이었고, 그들은 한국 땅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현지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과 조언 하나 하나가 타지에 있는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들이 유학 왔을 때 나와 같은 신분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 때 더 잘 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족들을 떠나 낮선 곳에 홀로 서 있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나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까? 왜 그 때는 나는 그 곳의 현지인으로, 그들은 그 곳을 방문한 사람들로서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었던 작은 행동들을 지금까지 기억해 주며 흔쾌히 내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이들에게, 나는 더 소중한 추억들을 마들어 줄 수 있었을텐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뉴질랜드라는 땅에서 내가 한 한마디의 따스함이, 하나의 친절이 다른 이들의 삶에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훗날, 내가 모르는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그 것이 내게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이웃에게 주저함없이 사랑을 나누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