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동안 살아남기 작전(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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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론이 문안 인사를 여쭙니다.

흰 눈에 덮인 크라이스트처치와 남섬의 최근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니 가슴 속까지 시원해 지는 것만 같다.

더운 날씨로 마치 인간 분수처럼 땀을 흘리던 나는 겨울스키를 즐기고 계실 독자 분들을 생각하며 더위를 식히려고 노력 중이다. 여름방학 시작으로 기숙사 식당이 문을 닫았으며 한국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자 국제학생들만 기숙사에 달랑 남았다.

이때부터 나는 ‘한국에서 방학 동안 살아남기’ 작전에 돌입했다.

기본 생존 전략은 사냥, 채집, 요리이다. 솔직히 사냥이라고 하면 좀 과장된 표현인 듯 싶기는 하지만….

기숙사 내 비축식량이 떨어지면 사냥을 나서는데 즐겨 찾는 사냥터는 근처 쇼핑센터인 ‘홈에버’이다. 거기서는 각종 음식, 옷, 가전제품 등의 판촉공세가 한꺼번에 밀려 오므로 입구부터 작전 대로 잘 움직여야 포위되지 않고 사냥을 마칠 수 있다.

첫 번째 전략은 평면 TV 등을 구입하는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 눈을 트롤리에만 맞추고 곧장 식품매장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의 그 푸짐한 음식들이 에어컨 빵빵하게 들어오는 시원한 건물 안에 있으니 편리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슈퍼마켓 안 절반은 음식 아닌 것들로, 충동구매라는 무서운 폭탄을 감추고 있으므로 눈 똑 바로 뜨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다시 일주일 치 식품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제대로 사냥과 채집을 끝내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하며 과일로는 키위, 유제품으로 우유, 치즈를 각각 샀다.

수산물 매장에서 대게를 보았는데 그렇게 큰 게는 본 것도 처음이거니와 얼마나 비싸던지 감히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 게를 계산대로 가져 가면 게가 알아서 스캔을 지나갈까?’ 엉뚱한 상상에서 퍼뜩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코너로 갔다.

그 곳은 시식코너, 이야~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단다! 만두가 얼마나 맛있던지 입에서 녹는 것 같다.

우리가 채집을 끝내고 나온 시간은 마침 밀리는 혼잡한 퇴근시간이었고 우리 장바구니 때문에 다섯 명 정도 앉을 자리를 친구와 내가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눈치가 보였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마치 성냥갑에 갇힌 고래가 된 기분이었다. 급기야 사람들이 내리면서 우리 쇼핑백을 밟는 바람에 안의 물건이 다 찌그러졌다. 김치나 빵을 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판암역에서 튕겨 나오다시피 내려서 기숙사로 돌아오니 온 몸이 파김치가 된 것 같다. 그, 러, 나, 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전자레인지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좀 문제였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까지 와 새로운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는 우리에게 이쯤이야 국립공원에서 산책하기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한국 표현으로는 식은 죽 먹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라면, 계란, 소금, 김치국물, 야채 약간을 가지고 비빔밥과 비슷한 것을 만들기로 했다. 전자레인지 속에서 계란이 터지는 소리를 신호로 저녁요리가 끝났고 그 제조 과정 및 외형과는 달리 꽤 맛있는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건강과 안전(전자레인지 폭발 위험?)을 위해 다음부터는 요리를 따로 하기로 했다. 그 이후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오뚜기 3분 요리’도 편하고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중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 제일 맛 있었다.

지난 학기의 시험을 힘들게 마치고 맞은 방학이니 그 동안 못해 본 것 여러 가지 일들을 이번 방학 동안 경험해 볼 요량이다. 마침 지난 시험 얘기가 나왔으니 그에 대한 설명으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다.

5 가지 시험 중 3가지는 한국어 시험이었는데 ‘우리의 고향’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것이 말하기 시험으로 주어졌고, 나머지 둘은 일본어와 중국어 시험이었다.

한국어로 된 문제로 푸는 일본어와 중국어 시험은 내가 가진 외국어 실력을 종합하는 것이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일부는 해석이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스스로 내 노력에 만족하고 흐뭇해 질 수 있는 시험이어서 뿌듯했다.

한국어 프리젠테이션 중 중국과 일본 학생들의 고향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 간 크기 차이를 다시 실감해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내 고향 마을 전체 주민이 400명 정도로 대전대 기숙사 생 숫자와 비슷하다고 말해주자 반 친구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뉴질랜드가 정말 작은 나라라는 걸 실감하는 동시에 그 뉴질랜드에서도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내가 세계와 이렇게 대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또한 생기는 순간이었다.

여름방학에 일본에 잠깐 다녀올 예정이고 현대아산에서 주관하는 여행에도 참가한다. 다음 호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크라이스트처치 한국 교민 여러분들이 모두 건강 하시기를 기원하며 여기서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