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왜 팬티를 밖에 입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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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화 수화기를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집안을 온통 뒤지고, 핸드폰으로 전화해봐도 찾을 수가 없어 아예 포기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다 말고, ‘엄마, 전화기를 왜 냉동실에 넣어놨어요?’ 하는 거야.“

음식을 데우려고 전자 레인지 안에 넣어 둔 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식사를 하는 일쯤이야 다반사이고, 분명 볼 일이 있어서 부엌으로 왔는데, ‘내가 왜 여기 왔지?’ 생각이 안 나서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가야지만, ‘아 참!’ 하게 되니, 그렇게 떨어지는 기억력을 위해 하루의 일과와 쇼핑 목록들을 메모지 위에 깨알같이 적어보지만, 그 메모지 챙기는 것조차 십중팔구 잊어버리니, 어느 날은 키위들이 잘 써먹는다는, 손등 위를 메모판 삼아 깨알같이 손등 메모를 한 후 나서면서, ‘어머, 손등이 왜 이리 더러운 거야?’ 나서다 말고는 후다닥 바스 룸으로 들어가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나옵니다. 그러니, 슈퍼를 온통 헤매며” 내가 뭘 사려고 온 거지?” 살 거, 안 살 거 다 사오게 되는 것이 우리 아줌마들의 건망증입니다.

이민 와서 가장 황당했던 저의 건망증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이러 합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학교 파한 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딸아이가 연락도 없이 집에 오질 않는 겁니다. 차츰 걱정이 된 저는 가까운 친구들 집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딸애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헉! 그러면 이 애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이 나라에서 애가 유괴되었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늦게까지 말없이 어디 갈 아이도 아닌데, 갑자기 온갖 걱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막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애가 학교 파한 후 지금껏 소식이 없으니 큰일 났다고 걱정, 걱정, 난리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따르릉’ 울리더니 수화기 저쪽에서 딸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아이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순간 화가 나기도 한 저는 언성을 높이며, “너 지금 어디 있어? 지금 어디냐구~~”
그러자 딸애가 하는 말, “네? 저 지금 엄마를 기다리는데 왜 안 데리러 와요? 공부 끝난 지 벌써 20분도 더 지났는데~~”
“뭐? 거기가 어딘데?”
“오늘 ** 에 공부하러 왔잖아요, 벌써 20분이나 지났는데… 궁시렁 궁시렁…”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학교가 파한 아이를 **에 떨구어 놓고는 그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시간 맞추어 데리러 가는 것은 고사하고 데려다 준 자체를 깜빡 잊고는 아이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피웠으니 그냥 웃고 넘어가기엔 실로 심각한 건망증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진짜 우스운, 그러나 한편으론 슬프기도 한 어느 아줌마의 재미있는 건망증 이야기가 있어 옮겨봅니다.

– 어떤 아줌마의 택배 받기 –
어제 낮에 조용한 우리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다. 플레이스테이션 주문한 게 벌써 왔다. ” 에이, 애기 재우려고 배위에 올려놓고 막 재우는 순간인데…” 얼라를 안고 나가서 문 열고 택배 직원을 만났다.

“안에 들여만 주세요, 고맙습니다.”
애기는 자꾸 운다. 난 낑낑거리면서 애를 안고 있다.
그 택배 직원은 키가 컸다.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싸인 할까요?” 내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젊은이는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더니 이내 타버렸다.
“꼭 이럴 때 누가 오지” 하면서 난 열심히 애기를 재웠다.
애기가 잔다. ” 아이구, 이제 좀 살겠네. 어디 어떻게 생겼나 뜯어 봐야지.”
박스를 풀고, ” 봐도 잘 모르니 남편 오면 설치하라고 해야지.”
손에 묻은 검정을 닦으려 화장실에 갔다. 수도꼭지를 돌리면서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나는, 나는 왜… 면 원피스 위에다 브라자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마돈나처럼… 얼마나 눈에 띠는 희한한 복장인가.
연두색 면 원피스 위에 살색 브라자…
아~~~ 그 택배아저씨는 나의 이런 모습을 다 보고 간 게 아닌가.
미치겠다. 뭐하는 짓인지. 아침에 일어나서 속에 안하고 왜 겉에다가 했을까.
그걸 모르고 아침 내내 청소하고 애 달래고. 아들놈 유치원 갈 때 현관서 빠이빠이 하고, 우리 아들은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주저앉아서 막 웃었다. 조금 지나자 눈물이 난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그 사람은 오늘 보면 안 보지만 내가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건지…
둘째 낳고 기억력이 정말 나빠진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내가 엉망이 되어 살고 있다는 게 그저 서러웠다. 내가 뭘 위해서 사는 건지, 집에서 애들 뒤 치다꺼리만 하다가 죽을 건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가사노동에 육아… 슬프다.
그 아저씨 분명 동료들에게 말했겠지. ‘나 오늘 이상한 아줌마 봤어. 어쩌구 저쩌구…’
정신을 가다듬고, 나를 돌아본다. 이 눈물은 왜 나오는 건지 하루 종일 생각 해봤다.
‘이젠 브라자는 꼭 옷 속에 하리라 죽는 날까지.’
그럼 슈퍼맨은 왜 팬티를 밖에 입었을까? 답이 없다. 지 맘이겠지.

건망증을 서글퍼하는 아줌마 글이 재미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지 슬프기도 합니다. 가끔은 생활을 무지무지 불편하게 만드는 건망증, 이 건망증이란 것이 심하다 보면 간혹, 이러한 건망증이 혹시 나중에 치매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은 의학이 날로 발전해 간단한 진료로 치매를 미리 체크할 수도 있으며 약물요법 등으로 증상을 완화시키기도 한다고 하니, 치매도 다른 질병들처럼 조기진단과 예방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