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체험한 한국의 4천만(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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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나는 내 인생 두 번째로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나의 한국어 공부를 격려해 주었던 절친한 친구를 만나러 작년에 난생 처음 2주 동안 다녀간 이후로 얼마나 다시 오고 싶었던가! 한국 재 입성의 찬란한 감격을 안고 인천 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좋은 친구이자 한국학교 선생님이었던 Angie씨의 안전한 안내를 받기 위해 장장 9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

감격이 가라앉으며 지루함이 대신 자리를 잡았지만 나갔다가 길을 잃을까봐 공항 주변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그도 공항에 자주 가지만 주변을 둘러본 적은 없고 다만 공항 버스로 곧장 서울까지 간다고 했다.

공항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약 2시간 걸렸다. 버스는 긴 다리를 지나 곧고 넓은 도로를 달렸다. 바다 위를 지나가며 갯벌, 작은 섬, 갈매기 등을 볼 수 있었고 공항 주변의 높지 않은 새 아파트들도 눈에 들어왔다. 순간 뉴질랜드 청년은 머지 않아 맞게 될 엄청난 충격을 짐작도 못한 채 그렇게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첫날 밤의 찜질방! 그 신선한 충격!!! 그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친구들과 같이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한 찜질방에 들어선 나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할말을 잃고 말았다. 탈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었고 나는 내 시선을 내 눈보다 아래로 둘 수 없어 고개를 들고 허공만 바라 보고 있었다. 당혹! 황당! 부끄러움!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일단 찜질방에 따라 들어온 이상 나도 같이 “자연스러워”져야 했다. 난감했다. 나는 옷장을 향해 선 다음 거기 꼬~옥 붙어 있었다.

그리고 배 아픈 사람 마냥 허리를 숙이고 쩔쩔매며 옷을 벗고 번개보다 더 빨리 찜질방 대여복을 주워 입은 후 목욕탕이 아닌 남녀공용 찜질방으로 직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는 나의 첫 날이었다.

첫 날의 충격을 수습하고 다음 날은 동대문 시장에 갔다. 한도 끝도 없이 즐비한 물건들에 놀라고, 싸고 좋은 품질에 더 놀라며 동대문을 구경하다가 무척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동대문 길 한가운데서 한 여자 분이 “공짜로 안아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나도 한번 해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왠지 그냥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낯선 곳에서 부리는 객기라고 할까?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앞 광장에서 다시 하라고 한다면 난 죽어도 못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공짜로 안아주기’를 시작하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응했고 나는 그분들 모두를 꼭 안아주었다. 대개 멀리서 여자친구들이 모여서 나를 보며 작전(?)을 짜고 그 중 한 명이 와서 안아 보고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식이었다. 공개적으로 수많은 여성들과 공짜로 안아 본 나의 잊지 못할 둘째 날이여! 내 나라 400만 인구와 한국의 4천만을 몸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날 밤에는 모텔에서 잤다. 안심 또 안심!! 한국 모텔은 뉴질랜드에 비해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뉴질랜드의 모텔은 기본 숙박 시설 정도가 다인데 한국 모텔은 웬만한 호텔보다 더 시설이 좋은 것 같다. 월풀 욕조와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DVD플레이어 등 놀 것이 많아서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보고 듣고 겪게 될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로 잠을 설치며 나의 모든 편견과 선입관을 벗고 한국을 가슴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 정리 : 오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