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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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명동으로 우리를 부르신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에 가본 적이 없는 우리는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소풍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한 두어 차례 간 것 같은데, 매번 우리는 낯선 명동 가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다른 곳에서 헤매고, 아버지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었던 것 같다. 마냥 애가 타서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우리를 보고 멀리서부터 반기며 이 명동돈까스에 데리고 가셨다. 딸들에게 아버지가 근무하는 곳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회사를 구경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마냥 신났다. 아버지를 만난 안도감, 새로운 장소에서 먹는 맛난 음식도…… 그 때의 아버지의 표정, 우리의 들뜬 행동들이 하나하나 기억난다. 당시에는 우리는 그냥 한국의 학생들일 뿐이었기에, 어른들이 있는 일터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일단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일수도 있지만, 나이가 어린 다른 사람들을 둘러봐도 가족들끼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부모님의 직업이 그리 멀리 생각될 분야만은 아니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dairy, 미용실, 식당 등에서 부모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살 때에는, 난 이 직업의 세계가 익숙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도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직장이라는 것을 다니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나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나, 직장 생활은 학생일 때와는 또 다른 생활임을 자주 느낀다. 그렇지만 ‘나의 아버지가 이렇게 일해 오셨구나.’ 하며 모든 힘든 시간들을 참아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더욱이 한국에 와서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의 체계나 질서, 관습과 제도에 대한 부분을 많이 체험하게 되었다. 수평적인 뉴질랜드와는 달리 수직적인 관계,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들, 잦은 야근… 이 모든 것을 직장인들은 자주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우리 아버지는 딸들을 회사 부근으로 부르셔서,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회사 근방도 구경시켜주시고 우리와의 시간도 갖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것을 잘 모르는 딸들은 점심시간을, 일하시는 시간을 쪼개어 나와 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만들었다. 걱정시켜 드렸었다.

그런 것들을 미처 모른 채 먹었던 그 때 그 돈까스는 참 맛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온 돈까스 집은 여전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내가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기 있다는 것과 나에게 돈까스를 사 주시던 아버지가 뉴질랜드에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이제 다시 오시면, 이번에는 제가 사드릴께요. 항상 감사합니다. 이 때까지 저희를 위해서 수고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