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월드컵과 올블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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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나 축구월드컵처럼 4년 마다 돌아오는 럭비월드컵이 드디어 일주일 뒤인 9월 9일(금)부터 6주 동안 이곳 뉴질랜드에서 열리게 된다. 1987년 시작해서 이번이 제7회 대회가 된다. 첫 대회가 뉴질랜드에서 열렸었고, 24년 만에 다시 전 세계 럭비 팬들의 시선이 온통 이곳 뉴질랜드에 집중될 것이다. 


한국도 참가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늘 일본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늘 대표격으로 6번 모두 참가했다. 사실 일본만 해도 럭비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꽤 있는 편이라, 1890년 럭비가 일본에 소개된 이래 국내에 프로팀들도 다수 있음은 물론이고 일본 관광객들은 뉴질랜드 여행시 뉴질랜드 국가대표팀 All Blacks의 유니폼 및 기념품을 많이 사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럭비에서의 뉴질랜드는 마치 축구에서의 브라질 혹은 영국 같은 세계 최강국의 위치이다 보니, 전 세계에 많은 뉴질랜드 코치나 선수들이 진출하여 활약하고 있으며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 받는 보수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프랑스, 영국 혹은 일본 등이 이곳의 우수한 럭비자원을 늘 유혹하고 있다. 크라이스트쳐치의 한 교민 자녀도 재학 당시의 그 실력을 인정 받아 일본의 프로팀으로 입단했다고 들었다. 현재 일본 팀의 코치도 왕년의 유명했던 All Blacks이었던 John Kirwan (TV에서 우울증에 대해 광고하는 사람) 이다.


역대 대회의 기록과 All Blacks의 성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우 승 준우승All Blacks 성적
 1987뉴질랜드 프랑스우승
 1991 호주 영국 3위
 1995 남아공 뉴질랜드 준우승
 1999 호주 프랑스 4위
 2003 영국 호주 3위
 2007 남아공영국 준준결승 진출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호주와 남아공이 2번씩 우승하고 뉴질랜드와 영국이 1번씩 우승했다.

평소 거의 늘 세계랭킹 1위인 All Blacks이지만 꼭 월드컵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징크스가 있다. 특히 월드컵 사이의 3-4 년간은 천하무적이다가 너무 뜻밖의 월드컵 중도 탈락은 많은 키위들의 위장을 상하게 했다. 1995년 월드컵부터 시청하기 시작한 저 역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이지만 여러분께 소개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아픈 과거를 더듬어 본다.


먼저 1995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결승전이다. 새벽에 일어나 TV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그전 경기까지는 고지대에서도 잘 뛰던 선수들이 비실비실하더니 결국 15대 12로 홈팀 남아공에 석연찮게 패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전날 선수들이 모두 의문의 식중독 증세가 있어서 그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혹시 2년 전 개봉했던 영화 Invictus를 보신 분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바로 이 결승전 경기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의 감독이고, 모건 프리맨이 당시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 역으로 그리고 이른바 본(Bourne) 씨리즈로 유명한 Matt Damon이 남아공 대표팀의 주장(Francois Pienaar)역으로 출연했다. 흑백간의 갈등을 이 우승을 계기로 해소하며 온 남아공 국민이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희생양이 바로 All Blacks 였다.

모두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으니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감격의 무대 뒤에서는 잘못된 충성심을 발휘한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넘어 간다. 주제가 럭비월드컵 우승을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그를 통한 인종화합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 전 남아공에서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초청연사로 나온 1995년 남아공 팀의 주장 Pienaar선수로부터 당시 월드컵 우승이 남아공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귀한 경험이 기억난다. 


다음은 유명(?)한 1999년의 패배이다. 역시 무조건 All Blacks가 우승을 할 것으로들 예상을 했지만, 그만 준결승에서 프랑스에게 어이없이 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드에 따라 기복이 무척 심한 프랑스팀인데 후반에 그 기세를 살려 주는 바람에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덕분에 결승에서 호주가 어부지리로 우승했다. 얼마나 큰 절망이 나라전체를 휩쓸었는지 직후에 열린 총선거에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이 Helen Clark의 노농당에게 패하게 되는데 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분석이지만 크게 믿지는 마시길.   


절치부심 후 4년 만에 돌아온 2003년 호주에서의 월드컵. 역시 각국의 전문가들이 다 뉴질랜드의 우승을 예상하는 가운데 All Blacks의 준결승 상대는 홈팀 호주. 홈팀의 이점을 감안한다 해도, 그 해 수 차례의 대결에서 All Blacks가 완승했던 터라 역시 뜻밖의 패배는 큰 상처가 되었고 그 덕분에 결국 한 수 아래로 보던 영국이 우승하던 모습은 상처 위에 소금 뿌리기 격이었다.  


2007년 이번에는 정말이다 라는 반복되는 기대와, 전세계에서 All Blacks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팀은 “All Blacks의 후보 팀”뿐이다 라는 농담이 왠지 불길하긴 했지만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고 그 상대는 다시 얄미운 프랑스팀이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준결승도 아닌 준준결승에서 20대 18로 패해서 일찍 귀국길에 올랐다. 큰 돈 들여서 유럽까지 가고 준결승 및 결승의 일정에 맞춰 숙소 및 입장권을 구매했던 많은 키위 팬들은 실없이 멀리까지 가서 다른 나라들끼리의 경기를 지켜 봐야 했다.


럭비 월드컵은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게 되면서, 어쩌면 뉴질랜드가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에는!”하는 열망이 크다. 더구나 크라이스트쳐치가 지진으로 겪는 고통을 월드컵 우승으로 위로하자는 선수들의 열망도 크고 하니, 또 다시 한번 더 기대를 해 봐야겠다. <양정석 스포츠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