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앤 더머가 된 데이브(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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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내가 한국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되묻곤 한다.

그러면 난 매번 그들의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고 한 오 초 정도 멍한 얼굴로 서있기 일쑤이다. 특히 선생님들이나 친구 부모님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해 수습이 안될 때는 참 난감하다. 각각 다른 표현과 어휘로 묻는 동일한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내 한국어 실력이 너무 짧은 지라…. 지금은 “한국말 잘 해요?”라는 표현을 배웠지만 아직도 가끔은 그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우리 학교 졸업 사진 찍는 날이었다. 친구가 사진을 찍길래 따라 갔는데 그 친구 학과의 교수님 한 분이 오셨다. 뉴질랜드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다는 교수님과 내 친구가 나누는 한국말 대화를 넘겨 듣자니 내가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들렸다.

교수님께서 “하이!”하고 인사해 “안녕하세요?”하고 한국말로 자랑스레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게 별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음을 직감으로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교수님은 속사포 같은 스피드로 한국 말을 나에게 날리셨고 나는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머쓱하게 친구를 바라보며 ‘통역’을 부탁해야 했고 사태를 파악하신 교수님이 자진해서 영어로 말씀을 해주실 때는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했고 그렇게 내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몇 주 전 나는 너무도 운이 좋게 한국인 80명 외국인 3명으로 구성된 환경스카우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여러 곳을 돌아보며 환경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행사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모든 안내는 당연히 한국어로 이루어 졌다!

진행을 맡고 계시던 강사 분께서 “자네, 한국말 얼마나 하는가?” 하시기에 질문을 알아들은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쪼~끔요”하고 대답했다.

바로 다음에 뭔가를 하나 더 물어 보셨는데 앞부분 조금을 빼고는 도대체 알 길이 없었다. (1분도 넘는 것 같이 느껴진) 10초 정도 지난 후, “뭘 물어보신 것일까? 이 생각 저 궁리,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에 나는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몰라요” 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이 모든 광경이 행사에 참가한 모든 이들 앞에서 펼쳐졌으니 여러분도 내 참담했던 심정을 쪼~끔은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또 프로그램 참가자들 중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도무지 내가 익숙하게 듣던 억양이 아닌지라 내가 잘 아는 단어를 말하는 데도 좀처럼 알아 들을 수 가 없었다. 우리 둘이서 대화를 시작하면 거의 매번 누군가를 데려다가 물어야만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자,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 영화 캐릭터하고 똑 같다고 “덤(바보) 앤드 더머(더 바보)”라고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는 그 애 말을 좀 더 잘 알아듣게는 되었지만 여전히 제일 알아듣기 힘든 상대였음을 다시 한 번 말해 둔다.

얼마 전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옆에 있던 꼬마 녀석과 한국 말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애 말을 거의 알아 들은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너무 자랑스러워 하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날아온 치명타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도 못 알아 듣는 단어가 많았던 바로 그 질문! 나는 그게 나의 한국말 실력에 대한 질문임을 직감으로 넘겨 짚으면서, “조~금”하고 대답해 주었다.

아! 이렇게 날로 좋아지는 나의 임기응변 능력이 나 스스로를 정말 감동케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실력이 느는 즐거움을 만끽해 볼 만하다 싶으면 어느 새 나는, 나에게 가해지는 원어민 한국인들의 속사포 어휘 폭격에 압도당하곤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런 경험들이 나의 한국어 배우기의 가속 장치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내 고향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없었던 가속 기어가 나에게 생겼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해 이를 사용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