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정을 알것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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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다. 그런데 굳은 약속(강아지 키우면서 드는 모든 수고)을 받아내고 키우게 된, 강아지를 돌보는 일이 온전히 내 일로 자리잡아 갈 무렵, 갑자기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강아지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야 할 일이 생기게 되었다.

강아지 돌보는 일에 차츰 짜증과 귀찮음이 일어날 즈음에 입양 보내게 되었으니 나는 속으로 너무 기뻤다. 그러나 그러한 기쁜 마음을 겉으로 드러냈다가는, 강아지 키우는 것을 무지하게 반대했던 남편의 핀잔을 들을 것이 뻔한 일이니(그러게… 내가 뭐랬어~~) 내색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강아지를 보내고 며칠이 지나자, 무언가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마도 그 짧은 시간에 알게 모르게 강아지와 정이 들었었나 보다. ‘드는 정은 없어도 나는 정은 있다’던데 그 하찮은 동물에게도 ‘나는 정’ 의 빈자리가 느껴지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정’이란 건, 유독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참 따듯한 마음이다. 언젠가 한 키위 친구가 자기 집에 차를 마시러 오라 해서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이럴 땐 그냥 슬쩍, “씨유, 바이~'” 하고 일어서야 하는데 눈치 없는 아줌마가 죽치고 앉아있으니, 그 아줌마, 간단한 빵을 준비하며 어떻게 만들어 줄까냐고 묻는데, 아직까지도 일단은 한번 거절하는 미덕(?)에 더 익숙한 아줌마가, “아, 나는 괜찮아, 너나 먹어” 했더니, “아 유 오케?” 한마디로 자기 빵만 챙겨와서는 냠냠 맛있게 먹는데, 내 배가 꼬르륵거리며, ‘에구, 한 번만 더 물어봐 주지’ 한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자기 것만 달랑 챙겨와서 먹을까. 참말로…….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까지 드는 거였다.

미국에서 살다 온 한 아줌마가 쓴 책에도 비슷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육 년을 미국에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국 물이 들었는지. 한동안 시어머니 속을 썩여드린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데, 내가 내 커피를 타면서 “어머니 커피 드시겠어요?” 하고 여쭈면 어머니는 그때 마다 “아이다, 니나(너나) 묵어라(먹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걸로 생각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 친구 분이 놀러 오셨다. 마침 그날 집에 있었던 나는 착한 며느리처럼 굴며 손님에게 물어보았다.

“차 한잔 드릴까요?”

손님은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사양하는 것이 우리네 예의였다.

“아니, 괜찮아요.”

손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어머니가 친구 분 손을 붙잡고 말했다.

“그라모(그러면) 안 된다, 돌라(달라고) 캐라(해라), 자는 안 묵는다 카몬 진짜로 안 준다 카이”

나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잠시 후에야 그 뜻을 알아듣고, 어느새 미국 문화가 몸에 밴 내가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때까지 나 혼자 커피를 마셔왔던 것이 얼마나 죄송했는지, 그 다음부터는 커피를 마실 때 달리 여쭈어보지 않고 시어머니 커피도 끓였다. 간혹 여쭤보면, 시어머니는 서슴지 않고 말씀했다.

“오야(오냐) 도고(주렴)”

‘한번 주면 정이 없다’는 말까지 만들어내서까지 한번 더 주고 싶어하고, 그리고 또 아무 이유 없이도 더 주고 싶고, 그렇게 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이 우리들 정서인데, ‘아 유 오케?’ 한마디를 끝으로, 다른 한쪽 구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의 정서가 아직도 익숙치 만은 않은 것이다.

하루는, 딸애가 일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만 들어보니, 한국에 부모 형제를 두고 온 한국 학생들이 가끔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울기도 한다며 도무지 그런 마음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그 ‘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서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해 보지만 일본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빈약한 짧은 영어로 명쾌한 설명이 나오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영어로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가 우리의 이 ‘정’ 이라는 단어라고 한다’. (이건 순전히 내 말이다) 그러니 가끔 이 ‘정’ 이란 단어에 대한 거창한 설명을 한 후엔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에휴! 설명한들 니들이 ‘정’을 알것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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