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5주년 그리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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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새로움이야말로 제 20년 동안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는 몸과 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낯선 것에 쉬이 적응하는 ‘장점’이기도, 반복되는 것이나 익숙함에 대한 권태감을 쉬이 느끼는 ‘단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잦은 이사들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그런 과정에서 정말 같은 ‘사람’이지만 생각과 살아가는 방식 등, 그 모든 것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전학을 가고 보면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서울에서 부천, 부천에서 대구 그리고 다시 대구에서 서울로. 그것은 단지 표준어와 사투리라는 언어의 차이뿐 만이 아닙니다. 말뚝 박기, 고무줄, 얼음 땡 등의 규칙들 또한 생소하기만 합니다. 전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그 곳의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도 사귀어 나갔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 덕택에, 은이는 이 곳 뉴질랜드까지 홀로, 감히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올해로서 뉴질랜드에 온지 5년째 입니다. 5년이란 시간은 짧은 것이 아니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옵니다. 울컥~하며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외국에 대한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뉴질랜드의 생활. 지금 돌아보니 그 때는 참 어렸던 것 같습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고등 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10대에서 20대로의 성장뿐만 아니라, 편안하고 자유롭고, 어쩌면 외롭고 지루할 지도 모르는 뉴질랜드의, 한국과는 또 다른 환경에 저의 성격, 가치관 그리고 삶의 잣대도 같이 변하고 성장에 왔던 것 같습니다.(지난 5년 동안 ‘크라이스트 처치’도 정말 많이 발전했습니다. 늘어난 차들은 물론이며, 쇼핑 몰들의 크기만 봐도 현저히 알 수 있습니다. )

뉴질랜드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뉴질랜드에서 처음 다가온 시련은 언어의 장벽이었습니다. 이것은 대구 방언과의 차이와는 격이 달랐습니다. 문화의 차이 또한 쉬웠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펜을 빌려 갔다가 던져서 돌려 주는 것이나(빌려간 주제에!), 가게에서 거스름돈을 던지는 직원들에게 처음엔 제가 뭔가를 잘 못한 줄만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에서 배운 것은 자라온 환경, 생활 방식이 다르던, 문화든 가치관이 다르던, 많은 것이 달라도 결국엔 우리는 다 같은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못나고 더러운 것은 싫어하며, 사랑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새로운 문화와 환경 그리고 사람들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처음 와서는 한국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또 고등 학교 2년 동안 1년씩, 2곳의 키위 가정에서 지내도 보았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기숙사에서 외국 친구들과 2년이나 살아도 보고, 2개월의 방학 중에는 일본에도 가서, 일본인 가정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아주 역마살이 껴도 단단히 꼈나 봅니다. (다음은 아마 중국일 듯?!)

이렇게 옮겨 다니는 환경에 은이는 어디에도 쉽게 적응하지만 결코 스며 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 온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그 많은 경험으로 은이는 언제나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떠날 곳이라는 인식은 사람을 방관자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딘가를 그리워하거나 동경하는 몽상가로도 만듭니다.

뉴질랜드의 정치나 사회면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5년이나 살았지만 왠지 내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을 맘 속에서 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그렇다고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엔 나의 나태함에 대한 입 발린 핑계 덩어리들일 뿐인 것이죠.) 가족과 다시 한 집에서 생활함을 동경합니다. Home stay, Dormitory, Flat이 아닌 ‘My Home’에 살고 싶다, 이 말입니다. 이제는 많이 커버려서 옛날 같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오히려 독립을 생각 해야 할 이 시기에) 말입니다.

하나의 길을 선택함에 따른 선택되지 못한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인 것이지요.

창 밖으로 보이는 까아만 밤하늘의 별들은 초롱 초롱 참 맑기도 합니다. 깍여진 손톱마냥 애처로운 저 초승 달빛은 사실 자신의 밝은 빛에 눌릴 별들에 대한 배려 입니다.

오늘의 제 글도 먼 타지에서 스스로의 무지개를 찾고 있는 유학생과 이민자 분들에 대한 조그만 마음입니다. 모두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하네요. ^-^ 아자아자! (5주년을 맞이해서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었던 조금 감상적이었던 은이였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