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한 단어가 있다.
어쩌면 이민사회에서는 조금 껄끄럽거나 예민할 수도 있는 단어… ‘관계’
나는 지금 내 자신이 ‘관계’의 큰 수혜자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때로는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이 단어에 대해,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여러 사람들이 ‘관계’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사는 어느 날 문득, 나는 이 ‘관계’에 조금은 강해진, 조금은 유연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관계에 대해 많이 실수하고, 많이 배울 수 있던 나의 크라이스트처치 생활이 떠올랐다.

뉴질랜드의 생활 15년…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에 살면서, 어쩌면 언어보다도, 나의 전공인 미술보다도 이 ‘관계’에 대한 부분을 더욱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나는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지만 어찌보면 매우 어려운…없어서는 절대 안 되고, 우리에게 큰 힘과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부담스럽고 힘들 수도 있는 ‘관계’라는 소중한 단어. ..크라이스트처치에 살면서 이 것을 여러방면으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다 나와 같은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만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이 것이 이민사회라는 특수성 안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한국에서야 유유상종. 그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다니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비슷한 세대끼리, 비슷한 취미끼리, 비슷한 환경끼리…그러나 이민사회의 경우는 각기 다른 배경, 다른 연령,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이민자, 유학생 할 것 없이 ‘한국 교민’이라는 이름으로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싫다고 잘 피해지지도 않고, 늘 오해가 많고 부딪침이 많았던 곳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일들을 자주 보았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결코 밝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주어졌던 아름다운 관계들 뿐 아니라, 어렸웠던 관계까지도 좋은 연습의 시간이었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겪고 또 봐았던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큰 교육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의 나의 유년시절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그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나는 현재와 같이 좋은 관계들을 유지하며, 관계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한국에 와서 지내면서, 또 회사생활을 할 때, 나는 매 번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그동안 참 값진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대한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직장생활에서도 언제나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관계’ 하나 때문에 일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 하루의 절반을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관계’가 틀어져 버리면, 직장 생활 전체가 고달프기도 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서로 존중할 부분도 필요하고, 말도 지혜롭게 잘 해야한다. 해서는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전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들이 있다. 아직도 능숙하지는 않지만, 크라이스트처치라는 (어쩌면 좀 작은)커뮤니티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조금이나마 인간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 것 같다.
어디에 있든지,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빠짐없이 사람들간의 ‘관계’가 자리한다. 내가 있는 곳이 작은 곳이든지, 큰 곳이든지, 지금 있는 곳에서 있는 어려운 문제들은 환경을 바꾸어도 또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좋은 관계들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관계’에는 서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 어떤 때에는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 같아도, 그것으로 내 자신이 성장하고 ‘관계’의 달인이 된다면, 결국 어디에서든지 관계로 인한 풍요로움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