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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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몇 초 전 까지도 승패의 향방을 알 수 없었던 결승전을 끝으로, 지난 6-7주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제 7회 럭비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결승전 및 이번 월드컵의 이런 저런 평가와 뒷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1점차로 울고 웃다

이번 결승전은 역대 결승전 중에서 양팀 최소 득점 (8:7)과 최소 점수차로 승부가 갈렸고, 그만큼 오랫동안 명승부로 기억될 것이다. 혹시나 했던 도깨비 팀 프랑스는 역시나 그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나타났다.


프랑스는 많은 언론으로부터 “조별 경기에서 2패를 하고도 결승에 오른 첫 번째 팀, 운으로 결승에 오른 팀, 역대 결승전 진출 팀 중에서 가장 자격이 없는 팀” 등의 혹평을 받았다.


이에 비해 올 블랙스는 이변만 없다면 최소 15-20점 차로 우승이 확실시 된다고들 하였고, 심지어 유럽의 어떤 스포츠 배팅업체는 이미 뉴질랜드의 우승을 기정 사실화 하여 결승전 며칠 전에 미리 배당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스크럼, 라인 아웃 그리고 강력한 수비 등 모든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경기를 하였고 심지어 후반전에는 오히려 올 블랙스 보다 약간 우월한 경기 내용을 보이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었다.


하긴 경기 시작 전부터 프랑스는 올 블랙스가 하카를 할 때, 금기를 깨고 중앙선을 넘어 오면서 까지 대응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 그 결과 경기 후 벌금을 내게 되었지만!  


반면 뉴질랜드는 부상으로 빠진 댄 카터를 대신하여 모든 킥을 전담하며 듬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피리 위푸 선수 마저 긴장한 탓인지 여러 번의 킥을 실패하여 점수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를 날리고는 교체되었다.


게다가 댄 카터, 콜린 슬레이드 선수를 대신했던 10번 애론 크루던 선수마저 전반 33분 다리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되어, 팀 내 4번 째로 10번 역할을 갑자기 맡게 된 스티븐 도널드로 교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선수는 경험이 많은 노장 선수이긴 하지만 1년 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큰 실수를 하는 등 원래 월드컵 선수로 뽑히지 못하여 사실상의 대표팀 경력을 마친 채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야 팀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결승점수가 되어 버린 페널티 킥을 성공하여 일약 영웅이 되었다. 뉴질랜드 럭비의 두터운 선수 층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겠다.


아무튼 프랑스는 불과 4주전 조별 경기에서 20점 차로 올 블랙스에 대패한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훌륭한 경기를 펼쳤고, 결승 경기의 최고 선수로 선정된 것도 프랑스의 주장 선수였다.


어찌 보면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보다 이번 경기처럼 매우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경기가 훨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8:7인 상태에서 결국 후반전 33분간은 양팀 모두 추가 득점을 못 했지만, 긴박했던 경기 진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저히 편하게 자리에 않아 있을 수 없게 하였다.

기쁨과 안도의 환호

이번 월드컵 동안, 나는 출석하는 교회의 홀에서 수 차례 교인들과 함께 시청하고 또 해설도 하며 응원을 하였는데, 목은 쉬었어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다같이 환호하였던 순간은 아마 오랫동안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올 블랙스는 월요일부터 3일간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및 웰링턴을 돌며, 그 동안 응원해 준 많은 국민들에게 감사의 퍼레이드로 보답하였다.

역대 최고의 월드컵

세계 많은 언론으로부터 이번 월드컵은 최고의 월드컵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400만 스타디움” 이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인 칭찬인데, 뉴질랜드 400만 온 국민이 관중이 되었고 또 온 국토가 경기장처럼 느껴 졌다는 최고의 찬사인 것이다. 그리고 역대 월드컵 중 가장 친절하고 따듯한 분위기였다는 평가다.


이처럼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마치 넬슨 만델라의 남아공을 하나로 만들게 했던 1995년 럭비 월드컵에 견줄 만 하다는 평가다. 같은 해 뉴질랜드는 요트의 아메리카스 컵 우승으로 이번과 같은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


두어 달 전만 해도 뉴질랜드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아마 더 이상 럭비 월드컵을 유치하지 못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이번의 성공적인 대회 진행을 계기로 “어쩌면 다시….”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들리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반면에 가장 많은 비판을 들었던 것은 바로 세계 럭비연맹 (IRB)이다. 독단적인 재정 및 행정 절차에다가, 약소국에 불리하게 짜인 경기 일정으로 인해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최소한 경기 일정만큼은 다음 2015년 영국 월드컵부터는 개선한다고 하니 기대를 해 본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

수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다시 보기 어려운 선수들을 기억하고 싶다.


등 번호 4번 브래드 쏜(Brad Thorn)은 호주에서 잘 나가던 럭비리그 선수였지만 어릴 적 꿈이었던 올 블랙이 되고자 과감히 럭비로 코드를 바꾼 선수다. 그렇게 원했던 올 블랙스로 마침내 선발되었지만 본인 스스로 아직은 그럴 수준이 아니라며 고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 뒤 다시 올 블랙이 되어 지금 36세가 되기 까지 온 몸으로 희생하며 모범을 보였는데, 이제는 일본 프로팀으로 옮긴다.


얼마 전 대표팀 100회 출전의 영광을 이룩한 풀 백 15번 밀스 물리아이나(Mils Muliaina)선수도 은퇴하여 일본으로 옮기며, 이번 결승전 주인공 중 한명인 스티븐 도널드(Stephen Donald)는 영국으로 간다고 한다.


사실 역대 우승국 중 다음 대회에서 그 타이틀을 방어한 나라는 한번도 없었는데, 4년 뒤 일부 선수들은 바뀌어도 지금과 똑 같은 열정으로 온 나라가 뭉치면 우리는 가능하지 않을까 미리 기대해 본다.  


경기 전 뉴질랜드 국가를 부른 헤일리 웨스튼라(Hayley Westenra)는 이곳 번사이드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 역대 뉴질랜드 아티스트 중 최고의 판매를 기록 중이다.


그녀가 다시 경기 후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 “Now is the hour”는 “지금은 안녕이라 말해야 할 때이고 당신은 멀리 가야 하지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나를 기억해줘요”라고 하는 가사인데, 이 이상 이번 월드컵의 모든 추억, 선수들 그리고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심정을 잘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