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그리고 <가난한 사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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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를 쉬운 언어로 표현해 많은 이로부터 사랑을 받던 신경림(본명 신응식, 1935~2024) 시인이 지난 5월 22일 경기도 고양의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충북 충주 출신인 신경림 시인은 스물한 살(1956년)의 이른 나이에 등단해 지금까지 68년간 시인으로 생을 이어온 한국 문학사의 거목입니다.
민중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신경림 시인의 장례식은 5월 22일, 고 이문구 작가(2003년)와 고 박경리(2008년) 작가에 이어 세 번째로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졌습니다.


대표작인 <농무(農舞)>와 <가난한 사랑의 노래>, 그리고 <목계장터> 등은 국어 교과서나 문학지에 실려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1988년 발표된 그의 시 <가난한 사랑의 노래>는 일정한 형식이 없는 1연 18행의 자유시인데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 중이던 어느 청년의 조촐한 결혼식에 주례를 서 준 신경림 시인이 신랑 신부를 위해 축하의 의미로 지어준 시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축하의 의미로 쓴 시는 <너희 사랑>이라는 다른 시이며 이는 <가난한 사랑의 노래>가 실린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다른 시입니다.
한편 이 시 중에서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그중 ‘까치밥’이라는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단어가 우리를 참 반갑게 합니다.
‘까치밥’은 글자 그대로 농촌에서 우리 조상님들이 까치들을 비롯한 날짐승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한겨울에 먹도록 따지 않고 나무에 남겨 놓은 감을 말합니다.
까치는 낯선 사람을 보면 큰 울음소리로 동네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왔다고 알려줘, 우리 민족에게는 예로부터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반가운 길조로 여기던 새입니다.
아침이면 찬 기운이 감도는 요즘, 그런 까치에게 추운 겨울의 먹을거리를 남겨주던 조상님들의 마음 씀씀이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부천 소사의 펄벅문화재단의 소사희망원에서 혼혈아와 함께한 펄 벅 여사.

한편 미국 여성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Pearl Buck, 1892~1973) 여사는 한국을 방문해 경주를 찾았던 당시 감나무 꼭대기에 감 몇 개가 매달린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건가요?”라는 질문에 저건 배고픈 겨울새에게 주려고 일부러 남긴 ‘까치밥’이라는 대답을 듣고 펄 벅 여사는, “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펄벅 재단의 ‘소사 희망원’을 설립해 차별받던 혼혈아들의 입양 사업도 했던 그녀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The Living Reed>라는 소설도 집필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던 작가였습니다.
이런 소중한 의미가 담긴 ‘까치밥’은 비단 까치뿐만 아니라 다른 새에게도 소중한 겨울 양식입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구절을 통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연에 먹을 것을 나누고 또 되돌려주시던 조상님들의 넉넉한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