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 렌터카로 만나는 독일 중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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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츠부르크의 전경

1회. 프롤로그 – 헤르만 헤세를 따라, 마음의 시간으로 떠난 여정

“목표만을 좇는 눈은 가는 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여로마다 기다리고 있는 숲과 강과 갖가지 장관도 보지 못한다. 여행의 비결은 순간의 순수한 빛이 바래지 않도록 그 길 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돌로미티에서 오랜 친구들, ‘옥타브’ 세 부부와 합류하기로 한 약속을 앞두고, 우리 부부에게는 온전히 우리만의 2주가 먼저 주어졌다.
오래전부터 함께 산을 오르고 술잔을 기울여온 세 커플과의 재회가 여행의 종착점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오히려 그 앞의 2주는 아무런 목적지도, 누구의 취향에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순전히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여백이었다.
은퇴 이후 처음으로 손에 쥔 이 긴 자유 앞에서, 우리는 며칠 동안 식탁에 지도를 펼쳐놓고 커피잔을 옆에 둔 채 이런저런 도시 이름을 짚어보곤 했다.
노트북을 펼치고 지도를 이리저리 넘겨보던 밤, 머릿속을 가장 먼저 채운 이름은 역시나 런던과 파리였다. 30여 년 전 스쳐 지났던 런던, 10여 년 전 잠시 머물렀던 파리.
그때는 젊음의 속도로 도시를 훑고 지나가느라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던 아쉬움이 여태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행을 계획하는 눈은 조금씩 달라지는 법이다. 수많은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이자 낭만의 대명사인 그 도시들 앞에서, 이번에는 화려함보다 먼저 현실적인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살인적으로 치솟은 물가, 언제 멈출지 예고 없는 지하철 파업 기사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뻔한 당부들. 은퇴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긴 자유여행에서, 우리는 낯선 소란 속을 헤매기보다 조금 더 차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을 원하고 있었다.
‘이 불안과 소란을 뚫고 찾아가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휴식일까?’
그 물음 앞에서 며칠을 뒤척였다. 결국 오랫동안 공들여 세워두었던 런던·파리 일정과 예약해 둔 숙소들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레겐스부르크의 일몰

대신 지도 위에서 유독 고요하게 숨 쉬고 있던 이름들에 눈이 갔다. 프랑크푸르트, 로텐부르크, 퓌센 같은, 한 번도 발음해 본 적 없는 독일 중남부의 소도시들이었다.
복잡한 노선 계산을 비워내고, 대신 렌터카 키를 손에 쥐기로 했다. 기차 시간표에 쫓기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차를 세우고 내릴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스스로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설렘보다는 호기심과 약간의 모험심이 앞선 결정이었다.
‘노잼의 나라’, ‘음식 맛없기로 정평이 난 땅’. 세상이 독일 여행에 붙여 놓은 야박한 선입견들을 나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유머 없는 사람들, 딱딱한 규율, 밋밋한 소시지와 맥주뿐인 식탁. 주변에 여행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왜 하필 독일이냐”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 다듬어놓은 타인의 평판만으로 가보지 않은 세계를 지레짐작하며 넘겨짚고 싶지는 않았다.
직접 밟아보지 않은 길 위에는 늘, 세상이 미처 알지 못하는 숨은 결이 조용히 깃들어 있는 법이니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이 여정에 헤르만 헤세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즐겨 읽었던 『데미안』과 『싯다르타』의 문장들이, 정작 그 작가가 나고 자란 나라는 한 번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독일 남부 칼프에서 태어나 평생 방랑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던 이 작가는 “모든 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여행이란 목적지에 다다르는 속도전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마주치는 순간들을 온전히 품어내며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낯선 지명들 앞에서 조바심이 일 때마다, 그 문장을 가슴에 품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헤세가 나고 자란 나라, 그가 거닐었을 법한 고요한 소도시들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 들어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기분 좋게 배반당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배반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반가운 사건이었다.
고층 빌딩의 차가운 정적 대신, 수백 년 전 중세 도시국가의 모습과 호흡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아담한 소도시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가는 마을마다 제각각의 역사와 자부심을 담아 정성스레 건네는 지역 맥주와 특색 있는 와인, 그리고 그 곁을 푸짐하게 채우는 투박하지만 정직한 음식들.
세상의 야박한 편견과 달리, 독일의 소도시들은 알면 알수록 다채롭고 맛보아갈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로 넘쳐났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모습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마음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킨 것은 ’독일 사람들’이었다.
근면하고 성실하지만 다소 무뚝뚝하고 차가울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그들은, 낯선 동양인 이방인에게 먼저 다가와 더없이 다정한 미소를 건네주었다.
멋진 성당 건물 앞에서 우리 부부가 서로의 사진을 어설프게 찍어주려 할 때면, 지나가던 현지 노부부가 다정하게 다가와 대신 찍어주겠노라 나서곤 했다.
처음엔 어색하게 사양했지만, 그렇게 건네받은 사진은 매번 뜻밖의 반전이었다.
구도와 각도까지 세심하게 챙긴 실력에 우리의 작은 의구심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정성스러운 안내와 눈빛 속에는, 낯선 이에 대한 담백하고 기분 좋은 존중이 담겨 있었다.
도시의 중심가를 거닐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안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요란하게 부를 과시하는 명품 가방이나 화려한 차림새 대신, 자신의 체형과 일상에 맞게 깔끔하고 실용적으로 갖춰 입은 사람들의 풍경.
화려한 거품을 쏙 뺀, 오직 물건의 기능과 삶의 본질에 충실한 제품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실과 일상을 단단하게 가꾸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헤세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신만의 결을 지키며 사는 삶’의 푸근한 온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불안한 화려함을 내려놓고 선택한 고요한 길.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목적지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길 위에 온전히 서자, 비로소 세상이 준비해둔 다정한 선물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오래된 중세의 시간 속으로 깊고 평화롭게 빠져든다.
큰 기대 없이 떠났던 독일에서의 시간들은, 은퇴 이후 부부가 함께 걷는 삶의 속도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젊은 시절의 여행이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는가로 채점되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가였다.
그리고 이 여행의 끝에는 돌로미티에서 기다리고 있을 옥타브의 세 부부가 있었으니, 홀로 걷는 이 2주가 오히려 그들과 나눌 이야기를 더 두텁게 만들어 줄 서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그 열두 개의 도시와 그 사이사이 놓인 작은 마을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 실망하고, 또 무엇을 내려놓으며 걸었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KR]
<다음 호에 계속>